07 충무로 고시원
성신여대 동거 생활을 끝내고 갈 곳이 없어 부모님이 있는 대전으로 갔다. 아무 말 없이 돌아온 나에게 부모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런 부모님에게 감사했다. 잔소리나 훈계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빠가 가끔 뭐든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할 뿐이었다. 아빠의 충고는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라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되었지만, 매번 내 속을 찔러댔다. 뭐든 해야 했다. 돈을 벌든 공부를 하든. 나는 다시 서울에 가기로 했다. 갈 곳이 없어 이 집으로 오긴 했지만 계속 머물 생각은 아니었다. 다행인 건 생각보다 돈이 잘 모였다는 것이다. 부모님과 따로 살 땐 알게 모르게 빠져나가던 돈이 다 내 돈이었다. 집에는 늘 밥과, 휴지와, 바디워시가 있었다. 대전에서 돈이 잘 모였다는 말을 바꿔하자면 서울에서는 돈을 모으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나는 두 달만에 서울로 올라왔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마음먹어서 대전을 싫어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패한, 돌아온 탕자같이 보일까 봐 대전을 싫어한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에서의 일정이 있었지만 내 삶에 필수적인 것들이라 말하긴 어려웠다. 글도 대전에서 배워도 되니까 말이다. 나는 명확한 이유를 대지 못한 채 서울로 올라왔다. 아마 내가 열망할 수 있는 세계 중 가장 큰 곳이어서 그랬지 않았을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사이즈. 비록 그 세계의 가장 작은 고시원이었지만 좋았다. 언젠가 온전한 곳에 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어서 그랬다. 부모님은 떠나는 나를 걱정했다. 특히 엄마는 걱정하는 마음이 다 드러나는 편이었다. 가끔씩 집에 들렀다 가도 한참을 배웅해주던 엄마였으니.
이번에 구한 고시원은 충무로에 있었다. 역시 뻔하게 생긴 고시원이었다. 삼십만 원짜리 월세의 고시원. 창문이 없고 침대와 수납장, 책걸상 따위가 있는 곳. ‘다시’ 온 고시원이 내 자리가 아니라고 외치듯, 적은 돈이지만 저축을 시작했다. 돈을 모아서 집 다운 곳에 살아야지. 한 번만 더 돌아오면, 어디로 가든 여기가 제자리인 양 돼 버릴 것 같아 두려워 그랬다. 나는 여기가 내 공간이 아님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렇게 되뇌는 건 나를 갉아먹지 않고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다. 열심히 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속도에 만족한 건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좋은 집에 살아야지. 부끄럽지 않은 집에 살아야지. 나는 내 부끄러움의 기준을 낮출 수 없다고 믿었다. 평생 남의 것을 보며 배가 아프고 내 것을 작게 느끼며 살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내 것을 키우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나를 괜찮게 바라보고 싶어서.
충무로에 많은 감상이 남아있진 않다. 길게 살지도 않았고, 첫 고시원도 아니었으니. 기억에 남는 건, 고시원에서 멀지 않은 남산골공원이었다. 남산공원 옆에 딸려 있는 듯한 남산골공원은 속을 환기시켜주는 공간이었다. 특히 밤에는 사람도 없고 바람도 시원하고. 남산골공원 가장 높은 곳으로 가면 타임캡슐광장이란 곳이 있었다. 타임캡슐광장은 거대하고 널찍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나는 그 돌담 위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원도 전부 보이고, 남산타워도 보이고, 유명 브랜드 아파트도 보이고. 내가 사는 고시원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자리가 더 좋았으려나. 답답한 고시원이 생각나지 않아서. 다른 곳보다 고시원에서 잠들기 힘들었던 게 답답해서였나. 처음 살았던 홍대 고시원은 정이라도 주었는데, 충무로 고시원은 그런 것도 없었다. 임시 거처에 지나지 않았다. 그즈음 누군가 어디 사냐고 물으면 ‘충무로 고시원’이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충무로라고 하거나, 그냥 고시원에 산다고 하거나. 어딘가 블러 처리를 하듯 그렇게 대답했다. 조금은 희뿌옇게. 대답은 해야겠고, 거짓말은 하기 싫고,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는 창피하고. 그래서 내가 거짓말을 잘하고 즐기는 사람이고 싶었다. 솔직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는 게 나았을 텐데 말이다.
참 부끄러운 것도 창피한 것도 많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