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방학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나는 할머니 댁에서 지냈다. 나는 이 순간을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녀가 무엇을 하든 다 예뻐해 주셨다. 늦잠을 자도 되고 신나게 밖을 쏘다니고 텔레비전도 마음껏 볼 수 있는, 방학은 자유의 날이었다. 겨울방학 어느 날 아침, 할머니는 옷을 챙겨 입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었다. 할머니가 외출한다는 신호였다. 어디 가냐 물으니 '과줄' 하러 간다고 했다. 과줄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썬 다음 식용유에 튀겨 엿이나 조청을 바르고, 쌀 튀밥 가루를 묻힌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한과와 비슷한데 네모난 모양에 쌀 튀밥이 붙어있다. 시골이다 보니 겨울엔 일거리가 없는 편인데 드문드문 지인분을 통해 한과 만드는 일도 하셨던 것 같다.
채비를 마친 할머니와 난 집을 나섰다. 어제 내린 눈이 제법 쌓여 온마을이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다. 무릎까지 차오른 눈길을 헤치고 산속의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일하는 집에 다다랐다. 웬만해선 집 주변 산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이곳은 처음 오는 곳이었다. 입구부터 화려했다. 장작더미와 닭장은 물론이고 새장이 나무 위에 걸려있었고, 토끼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건 칠면조였다. 닭보다 훨씬 큰 덩치에 몸빛은 청동색, 검은색, 흰색이 섞여 있고 꼬리가 부채 모양으로 펼쳐있었다. 머리에서 목에 걸쳐 피부가 드러나 있고 살이 늘어졌는데, 칠면조를 처음 본 나는 그 녀석이 다친 줄 알았다. 할머니에게 저 새가 다쳤다고 피가 난다고 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원래 그런 생김새라 했다. 나는 좀처럼 믿기지 않았고 조금 무서워서 할머니 옷자락을 꽉 쥐었다.
칠면조를 처음 본 날
정신을 쏙 빼놓았던 입구처럼 집안의 모습도 바빴다. 큰 거실과 방에는 다른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일하고 계셨다. 쌀 튀밥을 옮기는 사람, 큰 솥에 조청을 데우는 사람 사이로 과줄 반죽을 말리는 방도 멀찍이 보였다. 방에는 작업을 위해 깔아놓은 신문지가 그득했다. 동선에 방해되지 않게 한쪽에 자리를 잡고 둘러본다. 내가 기억하는 과줄 만들기는 대략 이랬다.
1. 쫀득한 반죽을 밀어 네모난 모양으로 자른다.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었다. 뜨끈하게 보일러를 틀어 바닥에 비닐과 종이를 깔고 자른 조각을 바싹 말려준다.
2. 잘 마른 조각을 선별해 기름 솥에 튀겨낸다. 이때 모양을 예쁘게 잡기 위해 양쪽 끝이 말리지 않게 집게와 젓가락으로 잘 잡아준다.
3. 튀겨진 과자를 옆쪽 할머니한테 넘긴다. 넓은 냄비에 뜨끈하게 데워진 조청 속으로 과자를 넣어 적당히 묻혀준다. 고루 발린 모습을 확인 후 바로 옆 쌀 튀밥 바구니로 옮긴다.
4. 숙련된 손목 스냅을 이용해 바구니를 흔들어 쌀 튀밥을 골고루 묻혀준다.
이때 조청을 적당히, 골고루 발라야 한다 그래야 듬성듬성 빈 곳이 생기지 않는다. 완성된 과줄은 넓은 쟁반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큰 모양, 작은 모양의 과줄들이 가득 쌓여갔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게 할머니 뒤에 붙어서 모든 것을 지켜봤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어르신들은 꼬맹이가 떼도 안 쓰고 얌전하다며 예뻐해 주셨다. 만들어진 과줄을 한 그릇 담아 따뜻할 때 먹어보라고 하셨다. 한입 베어 물자 "바삭"한 소리와 쌀 튀밥의 고소함 조청의 달콤함이 입안에서 조화롭게 퍼져나갔다. 반으로 가른 과줄에 뜨끈한 조청이 가는 실처럼 늘어졌다. 날름 한입을 더 먹는다. 과줄과 함께 튀밥도 한 그릇 퍼주셨다. 가득 쌓인 튀밥이 입안에서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린다. 맛있게, 신나게 먹었다. 이틀 동안 그 집에서 머물며 과줄을 원 없이 먹었다. 일을 해준 할머니는 돈을 받고 덤으로 과줄도 받았다. 무서운 칠면조를 뒤로하고 나는 할머니한테 말했다. "할 머이~ 우리 또 오자!"
30년 전 일이지만 처음 맛본 과줄 맛은 여전히 생생하다. 입맛에 착 감기던 맛이 이따금 생각나는데 요즘은 과줄을 찾기 어렵다. 과줄은 추억 속에만 머물러야 한단 말인가. 다행히 친척 가운데 과줄을 만드는 분이 있다고 한다. 오호라, 다음 추석 때 과줄을 주문해 먹는 상상을 해 본다. 신나게 상자를 열고 네모난 과줄을 보는 모습을. 과연 그 옛날 할머니와 함께 먹던 과줄 맛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