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담은 러브레터

by 소혜


책상 위 시든 화분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보다 더 다정하고 부지런한 손길을 만났더라면, 바스러진 잎 대신 예쁜 꽃을 피워냈을지도 모른다.


어그러진 모든 관계들은 기억 속에서 조금씩 가라앉다가도 불쑥 떠오르곤 한다. 나의 미숙함으로 멀어졌거나, 시간과 마음을 오래 나누었던 존재일수록 그 모습은 더욱 선명하다. 많이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마음에 오래 남아 가끔 나를 찌르는 일도 있다. 그럴 때면 잊고 있던 상처에 물이 닿은 것처럼 쓰라렸다. 이게 흉터라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텐데. 숱한 날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상처라는 사실이 나를 한 뼘 작아지게 한다. 언제쯤이면 지나간 일에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 시간이 멈춘 것 같던 밤들이 떠오른다.


그때 적은 글들은 나의 시간을 조금씩 흐르게 했다. 종이에 마구 써서 북북 찢어버린 글도 있고, 저장해 두고 아직도 종종 꺼내보는 글도 있다. 어쨌거나 일기가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어느 과학자의 말은 사실이다. 고여 있던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일은, 어두운 새벽을 지나 창문을 활짝 열어보고 싶게 만든다. 닫혀 있던 창을 열면 빛이 흐르고 세상은 여전히 생동한다. 그런 날들을 세다 보면, 영원히 얼어붙어 있을 것 같던 계절이 간다. 그리고 마침내 따스히 내려앉은 햇볕을 모아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어지는 날이 온다.


나는 사랑을 주고받거나 그로 인한 상처를 담담히 견디며 자라온 것 같다. 때로는 자라나는 날들보다 작아지는 날들이 더 많은 것 같아서 슬프기도 하다. 나무는 바람이 지나간 뒤 더욱 단단해지기도 하지만, 내 마음의 그릇은 작은 화분 정도밖에 되지 않아 거센 바람을 견디기엔 조금 벅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늘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한 시간들을 빛이라 부르고 싶다. 발밑에 그림자가 드리울 때에도 러브레터를 쓰듯 글을 적어 내려갈 수 있다면 좋겠다. 일상의 기록,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마음, 다정하게 건네고 싶은 위로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 담고 싶다. 내 보잘것없는 사랑이 아슬히 빛을 비껴가는 누군가의 창에도 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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