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빨래

by 소혜


한가로운 오후, 밀린 빨래 앞에서 작게 한숨이 나왔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무얼 하든 흔적이 남고 할 일이 생긴다. 조금만 더 늑장을 부리고 싶었지만, 귀찮은 일은 대부분 꼭 해야 하는 일이란 걸 알기에 입술을 꾹 깨물고 팔을 걷어붙였다.


섬유유연제와 세제를 붓고 한 시간쯤 지나면 세탁기의 움직임이 멈추고 익숙한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 항상 그 멜로디에 맞춰 흥얼거리는 건 남들이 모르는 내 오랜 습관 중 하나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깨끗하게 헹군 옷을 하나하나 꺼내어 탁탁 털고, 여름 햇살 아래 살짝 구우면 뽀송뽀송한 빨래가 완성된다.


뒷마당에서 가지런히 햇볕을 쬐는 옷들을 보니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지저분하고 물기 어린 마음들도 이렇게 따뜻한 볕 아래 펼쳐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이 흩날리는 마음을 꼭 잡아 놓은 채 바람이 멎고 물기가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알록달록한 빨래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다가 집안으로 들어와 커피를 내렸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밖이 금세 어둑해졌다. 이슬이 맺히는 밤에는 빨래를 전부 걷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향이 나는 빨래를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 돌아오는 길엔 발걸음이 가볍다. 가지런히 개어진 빨래와 이불, 뒤집어지지 않은 고무장갑, 말끔한 하수구처럼 일상의 작은 성실함이 모여 자존감이 된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어디론가 증발해버리고 싶을 만큼 힘든 날에도, 정돈된 공간을 보면 스스로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아 정신이 조금 맑아진다.


가끔 마음이 울적하거나 몸이 무거운 날엔 밀린 빨래를 몽땅 해치워도 괜찮을 것 같다. 먼지 쌓인 커튼과 옷장에 묵혀둔 이불까지도. 그렇게 잘 마른 빨래처럼 마음에서도 오래도록 햇빛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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