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시를 읽을 때면 주변의 공기, 빛, 소리, 냄새 같은 일상의 감각이 조금 더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느 여름밤, 외로이 스쳐가던 감정이 우연히 마주친 시 한 잔에 풍덩 빠져 마음을 적셨다.
웬디 코프의 「오렌지」는 소소한 일상에서 잠시 반짝이는 찰나의 순간들을 적어낸다. 감정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빛나는 문장들이 껍질을 벗긴 오렌지 한 알처럼 내 앞에 놓였다. 초여름 밤의 풀냄새처럼 싱그러움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문장 안에서 픽 웃음이 터졌다가, 때로는 길을 잃었다가, 뜻 없이 서글퍼지기도 했다. 꽃무늬 원피스의 끝자락처럼 부드럽게 살랑이다가도 어느 지점에서는 조각칼처럼 단단하고 힘 있게 새겨지는 글들이 시큼하게 마음을 울린다.
그녀의 시처럼 평범한 일상에 숨은 아름다움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준 가장 빛나는 선물인 것 같다. 책장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처럼, 늘 가까이 있는 것들에 지루함보다는 평화와 안정을 느끼는 삶을 상상해 본다. 그 속에서 언제나 오렌지만큼 작고 느슨한 행복의 단위를 적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햇살을 가득 머금은 오렌지 한 알과 함께 웃음을 터트릴 친구들만 있다면, 눅진한 여름과 짭짤한 눈물도 한 입에 쏙 삼켜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슬픔은 새콤달콤한 맛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언제든 그 속으로 뛰어들 용기와 다정함이 있다고 믿으면서.
점심시간에 커다란 오렌지를 하나 샀어-
그 크기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지.
난 껍질을 벗겨 로버트와 데이브에게 나눠 주었어-그들이 사분의 일씩 가지고 나는 반쪽을 가졌지.
그 오렌지 덕분에 너무도 행복했어.
평범한 일들이 종종 그렇지,
특히나 요즘에는. 장을 보는 일도, 공원을 거니는 일도.
모든 게 평화롭고 만족스러워. 새삼스럽게도.
남은 하루도 편하게 흘려보냈어.
해야 할 일을 모두 하면서도
즐거웠고 나중에는 여유시간도 생겼지.
사랑해. 살아 있어 참 좋다.
-웬디 코프, 「오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