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 때때로 블루

by 소혜


주말에는 반가운 얼굴들과 늦여름의 오후를 보냈다. 가을이 코앞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해가 덥석 쏟아질 듯한 날씨에 서둘러 시원한 카페로 들어섰다. 각자의 일로 오랜만에 만난 탓에 안 그래도 짧은 시간이 유리잔 속 얼음처럼 빠르게 녹았다. 그런데 즐거웠던 시간도 잠시, 그들의 얼굴에는 시원한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로도 가려지지 않는 월요일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주말의 끝인 일요일마다 찾아오는 ‘선데이 블루’는 소나기처럼 그들의 마음 한구석을 흠뻑 적시는 듯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쏟아내다가도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순식간에 그들의 머리 위로 먹구름을 만들었다.


블루는 본래 파랑을 뜻하지만,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우울감을 가리키기도 한다. 코로나 블루, 메리지 블루, 선데이 블루 등 다양한 블루가 우리의 마음 한편을 물들일 때가 있다. 나는 늘 파랑과 우울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우울은 무채색에 가까운 흐린 날씨 같은 게 아닌가. 시원하고 청량감이 느껴지는 파랑이 어쩌다 우울을 뜻하게 되었을까?


이는 18세기 무렵 바다 위의 슬픈 풍경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선장이 항해 도중 세상을 떠나면 선원들은 돛이나 깃발에 푸른 띠를 매달았다. 먼바다에서 돌아오는 배가 푸른 깃발을 단 채 항구에 들어섰다는 건 기쁨의 귀환이 아니라 죽음을 알리는 슬픔의 신호였다. 그렇게 파랑은 푸른 바다와 한 몸이 된 누군가를 떠올리는 슬픔과 우울의 색으로도 기억된 것이다.

나는 이처럼 어떤 단어에 깃든 이야기를 알아갈 때마다 머릿 속에 작은 불빛이 켜진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창밖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일요일 밤의 대화는 주로 월요일에 대한 저주로 마무리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요일의 날씨는 흐리겠지만 그들은 알고 있을까? 흐린 날을 잠시나마 맑게 하는 힘은 그들이 반복하는 일상의 성실함에서 나온다는 걸. 매주 월요일을 저주하면서도 묵묵히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이, 하루 종일 의자에 맞닿아 있는 꼿꼿한 등이, 새어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꾹 깨무는 입술이 세상을 단정히 흘러가게 한다는 걸.


이제 다시 각자의 바다로 돌아갈 시간이다. 매일 아침 힘겹게 발걸음을 떼는 모든 이들의 일상에 흐린 날보다 맑은 날이 더 많이 스쳐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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