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다한 뒤 사라지는 모든 것들 앞에 초연해지는 마음으로.
지난여름에 쓴 문장을 가을에 다시 읽으며 떠난 사람의 빈틈을 실감한다. 겨우 계절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게 커다란 여백이 생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아직 손에 잡힐 것만 같은 생생한 낯이 허공을 맴돌 때면 살갗이 시리게 따갑다.
삶과 죽음. 가까운 듯 먼 두 단어를 손끝으로 적어본다. 마우스의 커서가 그 사이에서 숨을 고르듯 오래 깜빡인다. 이렇게 적고 나면 아득히 먼 거리를 숨결이 닿을 만큼 좁힐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삶과 죽음,
삶과죽음.
이렇게 손가락 하나로 좁혀지는 이 여백을 메울 수 없어 우리는 어딘가 빈 구석을 가지고 살아간다. 상실과 소유, 축복과 추모, 기쁨과 슬픔을 모든 순간에 절반씩 나누어 가지며. 어쩌면 그 절반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유지하는 것이 인생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영원히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다정히 잊을 수는 있다. 슬픔에 추를 달지 않는 것. 상실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를 잃지 않는 것. 그리움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조금씩 찾는 것.
최근 많은 위로와 사랑으로 다시 쓸 힘을 얻었다.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에 기대어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마음들이 모여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 작은 용기로 우리는 또 하루를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견뎌보자고, 너와 함께라면 나는 조금 더 살아보고 싶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