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릇하던 잎사귀들이 노랗게 바래지고 찬바람에 긴 옷을 꺼내 입을 무렵이면 마음이 조금 들뜬다. 계절이 가져오는 풍경은 해를 거르는 법이 없듯 가을에 대한 나의 애정 또한 그렇다. 눈 깜짝할 새에 왔다 소리소문 없이 가버리는 모양새가 영 아쉽지만 그 또한 이 계절만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이때다 싶어 느리고 긴 산책을 즐기고, 화창한 날씨를 핑계로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읽고 싶던 책을 읽으며 감성에 젖고,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창문을 활짝 연다. 얼마 전 생일에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선물 받았다. 예전에는 카세트테이프에 목소리나 노래를 녹음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머지않아 엄지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면 메시지가 전송되는 세상이 올 거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았을까? 마음의 진폭을 한 곡의 노래에 담아 전달하는 낭만이라니. 언젠가 테이프가 늘어나고 음질이 바래질지라도 기억만은 짙게 남을 것 같다. 짧아서 더 선명하고 덧없기에 더 다정한 것도 있다. 흘러가버릴 줄 알면서도 뛰어들던 사랑처럼, 찰나를 붙잡으려 애쓰던 어느 시절의 마음처럼.
어느새 녹아버릴 듯한 뜨거움도, 얼어붙을 듯한 차가움도 없는, 상쾌하고 고즈넉한 새벽의 공기 같은 가을의 한가운데에 와있다. 문드러진 복숭아처럼 철 지난 생각들이 마음 한편에서 굴러다닐 때도 있지만, 차분한 공기 속에서 지나온 날들을 떠올리면 무엇 하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기분이 든다. 삶은 잠시 머물다 홀연히 사라질 것들 투성이니 허전한 빈 틈을 굳이 채우지 않아도 된다고, 반쪽짜리 마음도 누군가에게는 전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