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와 모과차

by 소혜


여름이 지나고 나서 자두에 푹 빠진 적이 있다. 붉은빛이 고르게 물든 시큼한 껍질과 달콤한 과육을 한 입 베어 물면 하루가 느슨해지는 기분이 든다. 여름내 복숭아를 먹느라 미처 맛보지 못한 계절의 여운을 뒤늦게 꼭꼭 삼켰다.


어느 오후, 외출을 했던 엄마는 자두를 샀다며 내게 전화를 걸었다. 제철이 지난 자두를 찾아 시장을 돌아다녔을 엄마를 생각하니 뾰족한 마음 언저리가 다듬어진 것 같았다. 검은 봉지에 담겨 있던 자두알처럼 맨질맨질하고 둥그렇게. 엄마는 내가 자두를 베어무는 걸 보며 모과청을 꺼내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달큰한 향이 오후 세시의 가을빛처럼 금세 퍼졌다.


날이 쌀쌀해질 무렵마다 우리 집에는 어김없이 모과향이 났다. 환절기마다 감기를 자주 앓는 언니는 매년 가을 모과청을 담그곤 했다. 부엌을 정리하던 엄마는 언니가 독립을 하면서 집에 두고 간 모과청에 물을 붓고 뭉근하게, 오래도록 끓였다. 누군가의 빈자리는 향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작은 틈을 메우는 일은 늘 남은 사람의 몫이다. 자두를 베어 문 자리에 움푹 파인 흔적을 바라보다 엄마가 건네는 모과차를 한 모금 마셨다. 늘 찬 음료를 고집하지만 모과차는 예외다. 따끈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목을 타고 넘어올 때 비로소 가을이 온 것만 같다. 짧고 은은히 머물다 자꾸만 뒤를 보게 하는 모과향의 가을. 자두의 새콤달콤한 여운이 입안에서 모과의 향과 섞였다. 달력이 얇아질수록 따뜻한 모과차를 자주 끓이는 엄마의 마음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자두자두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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