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라운 겨울 잠옷을 입고 느릿느릿 뒹구는 새해 첫날. 안부를 주고받느라 바쁜 엄지손가락과 달리 마음은 눈 녹듯 천천히 풀어진다. 살뜰히 인사를 건네는 오랜 친구들에게 상냥함을, 과일과 음식을 한 아름 안겨 주는 이웃에게 넉넉함을 배우며 흘러가는 하루가 참 다정하고 포근하다.
입꼬리가 유난히 자주 오르내렸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코끝이 시큰거린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고요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고,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크고 작은 소란들을 미워했다. 완주하지 못한 책들과 빈장으로 가득한 다이어리, 엑스 자로 그어진 목록들이 그리운 이의 얼굴처럼 눈에 밟히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웃음과 눈물이 많고, 겨울과 딸기를 좋아하고, 자잘한 것에 감동하는 내가 싫지 않다. 여전하다는 건 조금 고집스럽지만 어딘가 근사한 구석이 있는 말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이에게 여전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특별할 것 없이도 어딘가 단단하게 서려있는 듯한 모습이 대체로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멀리 있는 것에 욕심내지 않고 눈앞의 하루와 지난날을 끌어안는 삶이란 불행 속에서도 선명한 다행 같다. 이 뜻 모를 위안 속에서 게으름이 피어나는 자리에 깨끗하고 부지런한 다짐을 채워 넣기로 마음먹는다. 설렘과 두려움 속에서 달력의 첫 장을 넘기듯이. 다짐이란 말은 처음과 만났을 때 유독 씩씩해진다. 생각만으로 허리가 곧게 펴지고 주먹을 꼭 쥐게 하는 힘이 있다.
따뜻한 모과차를 옆에 두고 블루베리를 오물거리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남아있던 슬픔들이 어느새 비누처럼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마침내 지나온 날들이 조금은 가벼워졌으니, 머지않아 찾아올 모든 순간들도 담담히 품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