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을 곁에 두고

by 소혜


날이 조금 푸근한 듯싶더니 해가 기울자마자 날카롭게 얼어붙은 공기가 방안에 스며들었다. 한적한 카페에서 즐기던 복숭아향 커피가 그리워 옷을 갈아입을까 고민하다, 곧 익숙한 안락함을 택하고 이불속에 웅크렸다. 옅은 오렌지빛 조명 하나 켜놓은 채 맑고 슴슴한 문장을 오래도록 읽다가, 동그란 털뭉치 같은 흰둥이를 한참 쓰다듬기를 반복했다. 질리지 않고 영원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또한 언젠가 서글프게 그리워질 일. 유일한 것들은 모두 사랑에 버금가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아마 겨우내 복슬한 털옷을 입고 있을 내 강아지. 연둣빛 봄에는 예쁘게 털을 다듬어줘야겠다. 서툰 손길을 받아주는 새침하고 말랑한 뒤통수가 빵실해서 웃음이 났다.


여름에 꾸려놓은 방의 풍경이 고스란히 겨울로 넘어왔다. 연한 올리브색 이불과 노란 꽃이 촘촘히 수 놓인 커튼, 질서 없이 정연하게 진열된 손 때 묻은 물건들. 이 안에서 느릿하게 깃드는 계절의 빛을 바라보면 마음이 오래된 연못처럼 가만가만해진다.


잔잔해 보이는 공간에서도 작은 소란들이 종종 발생할 때가 있다. 눈이 먼 열일곱 살 흰둥이가 실수로 전선을 건드려 조명이 꺼지거나, 목이 말라 노랗게 질린 화분을 발견하거나, 한구석에 무심히 쌓아놓은 책들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그럴 땐 미간을 찡그리거나 한숨을 푹푹 쉬기보다 얼른 옷소매를 걷어올리는 편이 낫다. 이곳에서는 혼자 살포시 수습할 수 있을 정도의 일들만 일어나서 참 다행이고 좋다.


가끔 이리저리 뒤척이는 하얀 강아지를 조심스레 안아 침대에 눕히면 금세 꿈나라로 여행을 간다. 색색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룽지 사탕처럼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종종 입술을 달싹거리는 걸 보면 좋아하는 귤과 바나나를 오물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작은 몸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걸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불안이 자라날 때 몸을 움직이는 건 사랑이 빚어낸 습관이다. 이번에도 많이 춥고 외롭지 않게, 무사히 함께 겨울을 나고 싶다.


겨울은 덜어내고 사라지는 계절 같으면서도 많은 것을 안으로 거둔다. 몸은 움츠러들고 말수는 적어지는데 마음은 여름처럼 흘러가지 않고 어딘가에 자주 쌓인다. 특히 가을에 움튼 생각과 미처 닳지 않은 그리움들이 고여있어 자주 슬프고 자주 기쁘다. 그럴수록 공간을 단정하게 가꾸고 글을 많이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봤자 지금처럼 고만고만한 문장들을 늘어놓을 테지만, 나를 지키는 데에는 모자람이 없으니까.


겨울밤이 조용히 짙어졌다. 이 밤을 곁에 두고 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우리의 공간에서





작가의 이전글달력의 첫 장을 넘기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