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어느 겨울밤 수화기 너머였다. 입술 끝에 어떤 미련도 남겨두지 않으려는 듯 담백한 끝맺음이었다. 문득, 우리의 이야기가 이렇게 겨우 몇 문장으로 끝날 줄 알았다면 애초에 펼쳐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가 곧 입김처럼 흩어졌다. 그러기엔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이 너무 투명하고 애틋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서툴렀을지언정 한순간도 진심을 비껴간 적 없던 날들이었다. 그간 쏟은 시간과 정성이 아까워서라도 그를 간절히 붙잡고 싶은 마음이 일렁거렸다.
그는 이유를 묻는 내게 그냥 그게 서로에게 좋을 거라며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인생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던 그의 말이 꼭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사랑의 힘을 조금도 의심해 본 적 없던 풋내기였던 터라 끝까지 가보지도 않고 성급히 물러서는 그가 비겁하게 느껴졌다. 나보다 몇 해 앞서 살아왔다는 이유로 정답을 단정 짓는 듯한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저 남은 말들을 삼킨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더 이상 나에게 다정하지 않기로 한 사람에게 둥근 말을 뱉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슬픔은 눈과 입으로만 새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이상하게 손톱 끝이 따갑고 목울대가 뻐근했던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새벽에 잠깐 내리다 그친 눈이 탁한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한동안 나는 발걸음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고 길을 걷다 자주 미끄러졌다. 나는 늘 그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여름과 가을을 지나 마침내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 있음을 실감했다.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섰던 그해 겨울에는 잠시나마 새하얀 눈이었던 회색빛 무언가가 으스러진 마음처럼 발밑에 오래 서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