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흰빛이었던 겨울밤 같은 봄밤이었다. 발렌타인데이를 하루 앞두고 부지런히 초콜릿을 녹이던 밤.
가장자리부터 무너지던 달콤한 덩어리들이 서서히 윤기를 띠며 풀어졌다. 식어서 굳어지기 전에 딸기를 깨끗이 씻고 물기를 닦은 후, 녹은 초콜릿에 반쯤 담갔다 빼냈다. 생각보다 초콜릿이 딸기에 골고루 묻어지지 않아서 자꾸만 미간이 구겨지고 손이 바빠졌다. 예쁘고 좋은 것만 주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 서러웠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쑥스러워서 괜히 목덜미를 문지르게 된다. 어설프고 다정한 마음. 조금 창피하지만 많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마음.
창밖을 보자 흰 눈이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아름답게 서려있었다. 화이트 발렌타인이라니. 화이트 크리스마스만큼 포근하고 낭만적인 말이 또 있구나 싶어 마음이 잠시 휘청였다. 달콤한 향이 나는 두 손을 모아 다음날까지 눈이 녹지 않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눈을 감고도 거뜬히 그려볼 수 있는 기억들 속에는 언제나 서글프게 진심이었던 내가 있다.
내게 겨울로 기억되는 어떤 사람을 그려본다. 그는 울퉁불퉁한 딸기 초콜릿을 받아 들고 봄처럼 나를 안았지만 우리는 함께 벚꽃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잠시나마 새하얀 눈처럼 나를 들뜨게 했던 사람. 밉지만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람. 내가 많이 좋아했던 사람.
서툴게 보낸 사람을 떠올릴 때 부끄러움보다 애틋함이 먼저 고개를 드는 이유는 그 겨울의 내가 조금도 숨지 않았기 때문이다. 쭈뼛대면서도 예쁘지 않은 초콜릿을 불쑥 건네는 용기를 가졌으니까. 진심만으로 완성되었던 내 미완의 사랑이 여전히 그 겨울에 있다. 손톱만큼의 요령도 없이 순수했던 사랑의 온도가 그리워질 때면 종종 초콜릿과 딸기를 사도 괜찮겠다고, 발렌타인데이를 며칠 앞둔 오늘 밤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