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는 첫봄은

by 소혜


너의 사랑이 나를 여러 번 일으켰다. 물에 젖은 솜처럼 온몸이 무거울 때, 이해받지 못한다는 기분에 문득 외로워질 때, 소중한 것을 잃고 마음이 텅 비었을 때, 한결같이 나를 기다리던 너를 떠올리면 다시 밝은 쪽으로 걸어갈 힘이 생겼다. 묻지 않아도 이해하고 판단하지 않아도 곁에 머무는 사랑은 내 생에 커다란 선물이자 애틋한 인연이다.


너는 조그만 발로 무엇이 그리 바쁜지 집안을 분주히 오가며 우리 가족의 하루를 환하게 밝혔다. 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웃음이 번지던 날들이 견딜 수 없이 그립다. 네가 떠난 지금도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시간과 공간에는 여전히 너의 온기가 머물러 있다. 어떤 존재가 남겨 둔 흔적이 기억 속에서 계속 숨 쉬고 있다면, 여전히 곁에 머무는 것이라 믿고 싶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는 자명한 사실이 요즘처럼 아픈 적이 없다. 사랑도 함께 했으니 이별도 함께 하자고 고집을 부리고 싶지만 너의 생은 너무 짧고 귀해서 상실의 아픔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다. 물도 삼키지 못하는 너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이 무엇일지 고민하던 밤이 끝내 우리의 마지막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네 곁을 끝까지 지켰으니, 저 무지개 너머로 긴 소풍을 떠나는 네가 조금이라도 덜 무섭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유한하기에 빛났던 우리의 시간을 떠올린다. 수없이 연습했지만 서툴기만 했던 안녕도. 이별 앞에서는 언제나 걸음마를 떼는 아이가 되지만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야겠지. 그래도 꽤 씩씩한 이별이지 않았니. 너를 보내는 순간에는 내가 울지 않았으니까. 네 마지막 숨이 멎고, 고요한 집에 물기 어린 음성이 번지던 그 새벽이 마음에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유난히 시리던 2월을 이제야 조금씩 보내주고 있다. 보내주고 나서야 흘러가는 시간이 있다는 걸 이별 후의 나는 늘 깨닫는다. 나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세상이 가끔 야속하지만, 인생은 빠르게 가는 시간만큼 앞날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함께 준다고 믿는다.


숲이 우거진 산책로의 언덕을 오를 때마다 빛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봄의 설익은 햇빛과 흙냄새, 막 깨어나려는 나무들의 기척을 온몸으로 느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리움이 한 꺼풀씩 드러나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란히 발을 맞춰 걷던 겨울을 지나 봄이 왔구나. 네가 없는 첫봄은 얼마나 서글프고 또 아름다울까. 함께 걷고 달리고 껴안을 네가 없는 이 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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