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공간, 금란방
공연장: 국립정동극장
공연 기간: 2022.10.11. - 2022.11.13.
주최: 서울예술단, 국립정동극장
러닝타임: 20분 (인터미션 없음)
평소 ‘나빌레라’, ‘윤동주, 달을 쏘다’ 등 서울예술단의 공연을 좋아하는 나로써 올해 ‘금란방’ 소식은 나를 설레게 했다. 특히나 정동극장에서 하우스 어셔로 일하고 있는 내게 ‘정동극장’에서의 금란방은 꽤나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로써 막을 내리는 금란방을 총 8번 함께했다. 공연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오롯이 공연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지만, 공연의 시작 전부터 끝까지 이 공연과 함께 하며 누구보다 금란방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본 금란방은 총 세 가지의 매력 포인트를 가지고 있었다. 몸을 가만히 두기 힘든 신나는 음악,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는 파격적이고 재치 넘치는 이야기, 그리고 관객과 함께 살아숨쉬는 이머시브 형식의 공연. 이 세 가지 매력이 공연을 계속해서 보고 싶게 만들었다. 하우스 어셔가 아니었다면 나도 어느 순간 무대석에 앉아 ‘얘네들’과 대화를 나누고 춤을 췄을지도 모른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의 공연은 시작된다. 객석에 입장하기 전부터 하우스에 울려퍼지는 신나는 클럽(금란방의 컨셉이 조선 클럽이다) 음악이 내 귀를 강타한다. 무대 위 배우들은 들어오는 관객을 맞이하며 신나게 춤을 추고, 무대석의 관객들은 흥에 못이겨 무대에 올라 배우와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신나는 음악에 그 누가 이길 수 있을까. 관객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라도 노래에 몸을 맡기고 하나 둘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공연 전부터 우리는 모두 금란방에 놀러 온 조선 클러버들이 되어 있다.
첫 넘버부터 다같이 노래하며 춤추는 배우들을 보면 나도 저 무대에서 같이 춤추고 싶다는 생각이 커진다.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들 중에서도 몸을 들썩거리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더하여 무대석에 있는 관객들은 배우의 호응에 맞춰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우리는 막막한 현실에 치일 때, 가끔은 세상의 소리로부터 귀를 닫고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그렇게, 금란방에 찾아간 나는 신나는 음악과 배우들의 춤에 몸을 맡기며 스트레스를 풀어 본다.
배경이 조선 시대인데 파격적인 이야기라 하면 열에 아홉은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혹은 신분 사회를 비꼬는 유쾌한 사회비판을 하곤 한다. 금란방도 이 부분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비와 양반의 사랑, 양반규수와 천한 전기수의 사랑, 그리고 임금을 향한 사대부의 비판 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점은 그 사랑이 신분을 넘어 ‘성별’까지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랑을 ‘성별’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신선했다. 단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성별이 무엇인가는 중요치 않다는 금란방 속 인물들의 가치관이 인상적이었다.
한 가지 더 재밌었던 부분은 몸종(노비) 영이와 사대부 윤구연의 이야기였다. 아직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어떤 작품에서도 보지 못했던 사랑의 ‘취향’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에서는 종종 나오기도 하나, 이것을 무대 예술에서 보게 되다니. 개인적으로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금란방이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형태의 사랑’ 중 하나의 모양으로서의 역할은 톡톡히 했던 것 같다. 처음 봤을 땐 살짝 놀랐던, 그만큼 파격적이고도 재치있는 금란방이었다.
객석에 들어가는 순간 무대 위의 배우들은 관객을 향해 ‘어서 오시오!’, ‘오늘 금란방에 놀러왔소?’라고 말을 건다. 그렇게 우리는 ‘관객’이 아닌 금란방에 놀러와 이자상의 이야기를 듣는 ‘손님’이 된다. 공연 전 진행되는 사전 공연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관객들은 모두 손님이 되어 금란방에 빠져든다. 특히 무대 위에 따로 마련된 무대석에 앉은 관객들은 미리 준비된 장옷을 입기도 하고, 엽전을 가지고 투표도 하고, 다같이 잔을 들고 건배를 하기도 한다. 중간 중간 계속해서 말을 거는 ‘얘네들(이자상의 보조 전기수)’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공연의 일부가 된 관객들은 공연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공연 속에 들어가 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금란방이 극중극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만큼, 이러한 이머시브 형식을 택한 것이 굉장히 영리하고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금란방에서는 이자상이 전해주는 이야기 즉 극중극인 ‘요세인연’이 중심 이야기로 흘러가는데 이 요세인연 속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곧 현실의 매화와 이자상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이처럼 허구(공연)가 현실(관객)과 함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면에서 그 메시지가 더욱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금란방의 이야기가 현실로 확장되는 것과 함께 관객이 공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잘 맞아떨어져 완성도 높은 공연이 되었다. 다음에 다시 돌아온다면, 그 때도 무대석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그 어떤 공연보다도 다양한 사랑의 모양을 이야기하는 금란방.
내 사랑의 모양, 그리고 타인의 사랑의 모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깨달아가는 시간이었다.
금란방의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곳에선 꿈꿔도 좋다.”
진정한 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금란방에, 내 꿈과 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가고자 한다.
사랑은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오
너와 내가 선택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