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망각 추억 감정 사랑 영원 변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티없는 마음에 영원한 햇살
기억 망각 추억 감정 사랑 영원 변화
기억이 아닌 기록을 지우는 시대
프리즘 오브 특별호 : 이터널 선샤인
'안테나가 달린 두껍고 검은 수화기를 손에 들고 "이상하게도 보고싶네요."라고 말하는 조엘의 미소는 아이폰 화면 위 카카오톡 이모티콘보다 따뜻해보인다. 기억을 지우는 시술을 위해 사진첩에서 거칠게 사진을 뜯어내는 조엘의 손길은, 이별 후 핸드폰 속 앨범을 연어처럼 거슬러오르는 우리의 손가락보다 격렬해보인다.' (p.11)
머릿 속에서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기억을 지운 이에게 그 대상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클렘에게서 조엘이, 조엘에게서 클렘은 지워졌다. 2004년, 그들이 이별할 당시보다 기술이 발전한 지금. 기억은 지워질지 몰라도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내 머릿 속에서 누군가, 그리고 그 누군가와 있었던 사건을 지운다고 한들 '기록'은 세상에 여전히 남아있다. 기억을 지우는 것과, 기록을 지우는 것. 지금 우리는 후자가 더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사라지고 싶어도 온전히 사라질 수 없는 시대. 그것이 지금이다.
얼마 전, <펜트하우스>에서 하은별과 천서진이 기억을 잃는 약을 먹었다. 하은별은 천서진에게 기억을 잃는 약을 먹이며 말한다. "기억을 잃으면 엄마도 행복해질 수 있어." 여기서 그들의 기억은 자신들의 죄, 그리고 고통으로 얼룩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터널 선샤인>의 두 사람과 달리, 그들은 자신이 잊은 기억을 기록을 통해 계속해서 마주해야 했다.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탓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 세상에 그들이 남긴 기록은 여전히 존재했고 그 기록을 깨끗하게 지우는 건 불가능하다.
자의든 타의든, 끊임없이 내 일상을 세상에 기록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터널 선샤인>의 기억 지우기는 정말 SF처럼 보인다. 시간이 흘러 그 기록이 점차 견고해지는 세상이 올수록 더욱 더 기록/기억 지우기는 꿈만같은 일이지 않을까.
기억과 감정
"잊어가는 기억, 축적되지 않는 기억에 의미가 있을까."
-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이치조 미사키)
기억을 지운 클렘과 조엘은 운명처럼 몬탁에서 재회한다. 서로를 모르지만, 이상한 끌림은 그들을 함께하게 만든다. 기억은 지웠지만 감정은 남아있던 것일까.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해도>(이치조 미사키)에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히노,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도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히노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바꿀 수 없는 장애를 앓고 있고 그래서 히노는 어제를 기억하지 못한다. 즉 하루를 쌓지 못하는 것이다. 히노는 매일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그녀에게 도루는 새로움이었다. 도루는 매일이 한 번 뿐인 오늘의 히노에게 즐거운 하루를 선물했다. '잊어가는, 축적되지 않는 기억의 의미'를 의심하던 히노는 매일 처음보는 도루에게서 '이상한 익숙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기억은 쌓이지 못했지만, 하루하루 히노에게 감정이 쌓이고 있던게 아닐까. 한 번 배우면 지워지지 않고 우리 몸에 남아있는 자전거 타기와 같이 말이다.
아마 클렘과 조엘도 서로에게 '낯선 익숙함'을 보았던게 아닐까 싶다. 기억 속에는 분명 없지만, 어딘가 모를 끌림. 우리 몸에 남아있는 감정이 서로를 찾게 만든 것이 아닐까. <돌이킬 수 있는>(문목하)의 한 문장을 빌리자면, 그들은 감정의 지름길을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머릿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마음에는 저릿하게 여전히 남아있던 그 감정이 서로를 이끌고야 말았던 것이다.
클렘과 조엘이 처음 만난 날, 아무렇지 않게 조엘의 치킨을 뺏어먹는 클렘에게 조엘은 끌렸고 그 반대도 성립했다. 그렇게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던 것처럼, 기억을 지운 뒤 처음인 것처럼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또다시 서로에게 끌릴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모르게 남아있는 감정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지름길로 향하게 했다.
기억은 형벌일까, 축복일까
프리즘 오브 특별호 : 이터널 선샤인
'기억의 트라우마'가 기억 속에 붙어있는 온갖 아픈 감정들의 네트워크라면, '기억의 아우라'는 오직 기억만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 오직 그 사람과의 그 추억만이 지닐 수 있는 존재의 향기다. (중략) 그들의 연애는 끝났지만 그들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기억이 살아있는 한,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음을. (p.145)
조엘과 클렘은 자신들이 기억을 지웠음을 깨닫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뱉었던 모진 말들을 함께 듣는다. 또다시 서로를 미워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괜찮겠냐고 묻는 클렘의 말에, 조엘은 '그래도 좋아.'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다. 항상 나쁘지도, 항상 좋지도 않다. 그래서 기억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조엘과 클렘은 나쁜면이 있더라도 다시금 사랑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슬픈/나쁜 기억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물론 옅어지는 기억의 단면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나쁘기만 한 기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을 매개로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면에서 기억은 형벌이기도, 축복이기도 하다. 나쁜 기억 속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고, 좋은 기억 속에도 잔잔한 슬픔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티없는 마음에 영원한 햇살
모든 너절한 사랑의 모습도 영원한 햇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번 다른 사람과 같은 사랑을 하는 만큼이나 같은 사람과 다른 사랑을 한다. 우리 역시 매일 다른 모습으로 다른 햇빛을 맞이한다.
영원은, 불변의 동의어가 아니다.
- 프리즘오브 특별호 : 이터널 선샤인 p.82.
조엘과 클렘의 결말에 관해서는 많은 해석이 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설원 속의 모습. 그들은 이후 쭉 사랑을 했을 것이라거나, 혹은 계속해서 기억 지우기를 반복했다거나 하는. 나는 그 두가지에서 전자를 응원하는 편이다. 물론 그 연애의 나날이 매일 행복으로 가득차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두 사람은 영원히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조엘이 깨달았던 클렘을 향한 사랑이, 그리고 기억을 지운 후 여전히 조엘을 찾았던 클렘이. 더이상은 어긋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터널 선샤인, 영원한 햇살은 그들을 향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영원은 불변의 동의어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은 매일 매일 다른 모습이지만, 계속해서 '나'이다. 그런 것처럼 햇살, 그리고 사랑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영원을 지켜나간다. 그 둘 사이에 아프고 모진 다툼과 헤어짐이 있더라도, 결국 그들은 다시 사랑할 것이다. 그렇게 영원한 사랑을 해나갈 두 사람을 상상하고 싶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건, 당신을 사랑하는 내 모습까지 사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결핍과 부끄러운 모습들까지 사랑하는 당신을 통해 나 또한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조엘도 클렘도 그렇게 각자의 부족함까지 받아들이기로 결심했고, 이는 사랑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계속해서 부딪힐 우리를 알지만, 우리는 또다시 서로를 사랑할 것이니까.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거야."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장강명) p.148.
아무리 고통스럽고 모진 말과 사건들이 그들을 괴롭혀도,
그들은 다시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