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공간보다 거대했던 김환기의 '우주'
S2A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325 1층, S2A)
2022.10.14 ~ 2022.12.21.
김환기의 그림과 김향안의 글에 담뿍 빠져있는 요즘, 운 좋게 사전예약에 성공해 S2A에 다녀왔다. '환기의 노래, 그림이 되다'라는 부제를 가진 이 전시는 작고 아담한 공간에 큰 마음을 지닌 채 김환기의 그림을 선보이고 있었다.
김환기의 그림들은 그가 그림을 그린 공간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되곤 한다. 서울-동경 시대, 서울-파리 시대, 그리고 뉴욕 시대. 익히 알려진 김환기의 그림들은 대체로 뉴욕 시대에 포함되어 있고, 많은 비평가들도 김환기의 뉴욕 시대가 가장 그의 그림이 깊어졌을 때라고 평가하곤 한다. 본 전시에서는 총 17점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1950년대 작품부터 1970년대 작품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김환기의 그림을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그 작품에 담긴 이야기에 있었다. '노래'라고 표현한 그 김환기의 이야기, 그리고 시가 바로 그림에 담겨 있음을 알고부터 그의 그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것을 사랑했던 김환기가 그림에 담았던 달과, 산과, 항아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며 그림에 담았던 수많은 점들. 어느 때보다 힘든 시절에도 자신의 열정을 모두 그림으로써 불태웠던 김환기의 이야기는 그의 그림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김환기는 뉴욕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추상에 접어들었다. 그중 한 작품인 '봄의 소리'는 본 전시 작품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봄의 소리' 캔버스 앞에 선 순간 정말 그림의 점들이 움직이며 소리를 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푸른색인데, 차갑게 느껴져야만 할 것 같은데 봄의 따뜻한 생동감이 느껴졌다. 점들이 하나하나 숨 쉬며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본 전시의 정점. 김환기의 '우주'를 만났다. 커다란 캔버스 위 찍힌 수많은 푸른 점. 계속해서 중첩되고 번져나가는 점들. 결국 그 점들은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다른 점과 연결되어 만나고 있다. 이 작품이 각각 분리된 두 캔버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우주'의 만듦새를 완벽하게 했다. '우주'가 있던 암전 된 공간 안에서 숨을 죽인 채 계속해서 그의 우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 때 위 작품이 한국 미술 최고가로 낙찰되어 큰 이슈를 끌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미술에 큰 관심이 없었고, 나 또한 그 금액에 놀라 '우주'와 '김환기'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아주 조금의 성장 이후 나에게 '김환기'와 '우주'는 그만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변모했다. 이번 '화중서가(畵中抒歌) 환기의 노래, 그림이 되다'에 김환기의 우주를 전시한 김용기 회장은 고가의 작품이 더 이상 몇 사람만을 위한 장롱 속 금송아지로 있어서는 안 된다며 이번 전시에서의 공개를 선뜻 결정했다고 한다.
"고가의 작품은 일반인들이 쉽게 구입할 수 없다. 나는 고가의 작품을 구입하는 컬렉터들을 보는 사회적인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컬렉터들은 소유하고 있는 좋은 작품을 미술을 사랑하는 일반인들이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고가의 작품들이 더 이상 몇 사람만을 위한 장롱 속의 금송아지로 있어서는 안 된다."
- 글로벌세아 그룹 회장, 김용기
이는 김향안 여사의 생각과도 같았다. 김향안은 그의 일기에서 그림은 꽁꽁 포장된 채 창고에만 있어서는 안 되며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공기를 쐬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얼마나 예술을 사랑했는지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전시의 규모는 작았지만, 김환기의 우주는 그 어떤 공간보다 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