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희 Mar 22. 2023

[책]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최소한의 선(線), 그리고 최소한의 선(善)

우리 사회는 왜 이 모양일까.
법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왜 법은 강한 자들에게만, 그리고 범죄자들에게만 관대한 걸까.

우린 때로 이러 저러한 불만들과 분노로 사회를 바라보곤 한다. 뉴스 포털엔 매일 누가 누구를 죽였느니, 성폭행을 했느니, 비리를 저질렀느니 하는 기사들로 가득하고 시간이 흐르면 그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덜 처벌받는 것 같다. 그렇게 차곡차곡 분노는 쌓이고 쌓여 우리 나라는 왜 이모양이냐는 고름이 생긴다. <최소한의 선의>는 그런 우리의 불만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설명해주는 책이다. 법이 어떤 것이고 그 법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따뜻한 온도로 전해준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움직이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거야 받아들여”라고 하지 않는다. “나도 그러한 분노를 겪었고 혼란을 겪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선 필수불가결해, 그런 점에 있어선 나도 안타까워, 그렇지만 우리 조금 더 법을 이해하고 서로를 알아갈 순 없을까?”라고 말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작가도 내 마음을 이해하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다. 나와 같이 분노하고 나와 같이 불만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니 딱딱한 법 이야기가 조금은 말랑하게 다가왔다.


  평소 법에 관심도 많고 법과 관련된 여러 수업도 들어봤지만, 이렇게 읽는 헌법 그러니까 최소한의 선의는 또 한 번 내게 ‘선’을 이야기해줬다. 그 선이 내가 지켜야 할 선이 될 수도 있고, 남을 향한 혹은 나를 향한 선의가 될 수도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이 사회에서 최소한의 선의를 가지고, 내 편이 아니라면 그냥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p. 09.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이기도 하다.


p. 34.

대체로 무엇이 엄청나게 중요하게 강조된다는 것은 그것이 엄청나게 위협받고 무시당해왔다는 반증일 때가 많다.


p.106.

엿보기의 쾌락에 탐닉하는 관음증의 시대이기도 하고, 자기만의 도덕적 완장을 차고 타인을 감시하는 새로운 종교 경찰의 시대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각이란 수시로 변화하기 마련이고 어떤 특정한 맥락 속에서 표현되는 것인데 그중 어느 한 부분만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툭 잘라 이것 보라며 전시하고 조리돌림하고 잊히지 않도록 ‘박제’하기까지 한다. 종교적 열정에 들떠 십자군 전쟁에 나선 기사들처럼. 바야흐로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마녀사냥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일까.


p. 205.

자유가 사회를 견인하되, 그 속도가 누군가를 낙오시켜 쓰러지게 만들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 무조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면 잠시 멈출 줄도 아는 것. 어쩌면 그 망설임의 순간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p. 240.

과학기술의 위력이 압도적일수록 인문학적 상상력이 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생명줄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인류 오랜 역사의 산물인 법에 대해 공부할 필요성도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작가의 이전글 [책]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