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또 다른 나의 삶의 모양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즘의 나는 내 삶이 옳게 가고 있는지 나의 미래는 어떠할 지 지금 난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 아니 고민의 탈을 쓴 걱정과 염려로 가득하다. 이전처럼 하루하루가 재밌지 않고 그냥 살아가야 해서 살아가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도서관에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만났다. 근로 장학을 하며 읽을 책을 그냥 책장에서 골랐는데, 책을 읽으며 나는 노라가 되었다. 그리고 책을 통해 노라의 삶을 살 수 있었다.
노라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그 삶을 마감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역설적이게도 수많은 그녀의 삶을 살게 된다. 나도 노라와 함께 노라의 다양한 삶을 살았고, 지금 내가 아닌 수많은 나의 다양한 삶을 상상하게 됐다. 어릴 적 내가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악을 했으면 어땠을까, 고등학교 때 성악을 더 열심히 해서 지금 이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를 갔으면 어땠을까, 스무살 때 선호에게 용기내 문자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난, 그리고 그 삶 속에서의 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자꾸만 상상하게 됐다. 그리고 결론은 노라와 같았다. 어쩌면 나의 다른 삶이 지금의 나보다 더 행복하고 더 멋질 수 있겠지만 그건 어쨌든 ‘나’니까 지금의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지금 주어진 나의 삶을 충분히 누리자고. 그렇게 ‘감히 포기할 생각’하지 않는 나로서 살아가고자 또 한 번 결심하게 됐다.
그리고 다행인 건 지금의 내 옆엔 내가 깊이 사랑하고 나에게 사랑을 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한 없이 슬픈 날에도 난 웃을 수 있고 그런 날들 속에서 다시금 사랑이 주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보다 더 행복한 것이 있을까. 물론 노라가 말했던 것처럼 영원히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는 없다. 슬픔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일부이고, 슬픔 없이는 행복을 얻을 수 없으니까. 그러니 난 지금의 내 삶을 더욱 더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어느 삶에서든지 난 슬프고 또 행복할 것이고, 그런 삶 중에서 지금의 삶이 어쩌면 그 행복의 크기가 가장 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노라가,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마주할 수많은 감정 속에서 사랑과 행복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아마도 노라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갔던 이유와 비슷한 듯 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또 다른 수많은 삶들을 살아보기 위한 도구랄까. 그렇게 가보지 못한 길을 가보고, 지금의 내가 느끼지 못한 많은 감정을 느껴보고, 그렇게 다시 내 삶을 사랑하게 되는 일. 그래서 자꾸만 소설을 읽는 것 같다. 소설이 나에게 선물한 여행을 충분히 누리며 내 삶을 사랑해야겠다.
p. 38.
행복했던 순간도 시간이 흐르면 아픔이 될 수 있다.
p. 246.
모든 것을 가지고도 아무 느낌이 없을 수 있다.
p. 258.
“삶에는 어떤 패턴이 … 리듬이 있어요. 한 삶에만 갇혀 있는 동안에는 슬픔이나 비극 혹은 실패나 두려움이 그 삶을 산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은 단순히 삶의 부산물인 뿐인데 우리는 그게 특정한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사는 게 훨씬 쉬워질 거예요. 슬픔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도요. 슬픔 없이 행복을 얻을 수는 없어요. 물론 사람마다 그 정도와 양이 다르긴 하겠죠. 하지만 영원히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 있는 삶은 없어요.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더 불행하게 느껴질 뿐이죠.”
p. 353.
칙칙한 잿빛 하늘 아래 케임브리지에 있는 집 정원에서 노라는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의 무시무시한 힘을 느꼈다. (중략) 그녀가 추락하지 않게 받쳐주는 사랑의 그물망이 있었다.
p. 382.
“포기하지 마라! 감히 포기할 생각은 하지도 마, 노라 시드!”
p. 392.
모든 것이 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무한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늘 다양한 가능성의 미래를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