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이라 했지만, 지금 피는 꽃은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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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십일홍
아무리 붉은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그저 인생무상을 읊는 옛말이라 여겼다
하지만 다시 한 살을 맞이하면서 그 말이 가슴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가까웠던 사람들을 좀 더 덜 만나고 내면에 집중할 때
의미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허망했다는 걸 알아갈 때쯤 나는 좀 성숙해 지나보다.
남은 생은 짧아지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이 하고 싶어 지지만 정작 사회는 정년이란 타이틀로 올가미가 써지는 나이로
하고 싶은 일은 점점 줄어든다. 하지만 새롭게 부상한다.
경제적으로 다시 배우며 도전하는 시기 나쁘지 않다.
언젠가부터는 별일 아닌 일에도 자꾸 눈물이 고였다
기쁨보다 허무가 먼저 찾아오는 시간이다
삶이 작아진다기보다
오히려 더 깊어지는 순간이다
삶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질문이 시작되는 자리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정의하기 어려운 이 감정은
놓아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인생은 해야만 했던 삶이었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러나 이제는
무엇도 강요되지 않는다
역할이 벗겨지고 나니
나는 누구였는가라는 물음이 남는다
환갑 이후의 마음은 슬픔이 아니라 진실이다
공허함은 잘못된 감정이 아니다
쓸쓸함 또한 병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채우고 달려온 자에게
처음으로 주어지는 멈춤의 자격이다
이루는 삶에서
이루지 않아도 되는 삶으로 전환되는 순간
바로 지금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마주하게 된다
진정한 자유는 아무도 묻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 이유 없이 존재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다시 피는 꽃은 내면에 핀다
젊을 땐 수많은 꽃을 피웠다
사랑
일
성공
기대
실망
그 모든 꽃은 시간이라는 바람에 흩어졌다
그러나 지금 피는 꽃은 다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꽃이 아니다
스스로 향기를 느끼기 위한
내 안에 피는 조용한 꽃이다
그 꽃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는 대신
지지 않는다
지금 허무하고 슬픈 당신의 감정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건
당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깊이 사랑했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흔적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아도
마지막까지 피워야 할 꽃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사랑도 명예도 아닌
그저 나 자신에 대한 조용한 연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