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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대신에 군대를 가야 했던 큰 아들

89년 생 내 아들이 입하나 줄이려고 군대를 가던 날

by 황갑연

부산역에서 서울로 가는 ktx 승강장은 큰아들의 군입대를 위한 친구들의 환송회로 떠들썩했다.


10명의 절친 중 첫 번째로 입대하는 큰아들을 헹가래 쳐주던 친구들은 목청을 높여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기다리던 기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올 때 큰아들 친구들은 나를 향해 "어머니 잘 다녀오세요 " 합창을 하며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큰 아들을 껴안으며 아쉬움을 나누었다.


"O영아 몸 건강히 잘 지내라. 면회 갈게."


"충성"


어설픈 경례로 한바탕 웃음을 준 큰아들은 8살 어린 남동생의 손을 잡고 나와 함께 기차에 올랐다. 파란 하늘과 장미꽃이 어우러져 가족이 함께 나들이하고 싶은 따사로운 5월이다.


우리가 앉은 건 4인가족석. 한 자리는 비었다. 서로 마주 보는 자리에 앉은 우리 세 식구는 조금 전 분위기와는 다르게 서로를 외면하려는 듯 차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큰아들과 눈이 마주치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 좋은 봄날 비어있는 한자리 의자에 남편이 병원에 있는 대신 그 자리를 채워 어디론가 떠나는 기차여행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는 남편은 큰아들과 이별이 아쉬워 목발을 짚고서 절룩 절룩 병원입구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들며 눈물을 훔쳤다.


"아빠 나 이제 간다. 빨리 나아서 면회 와야 해"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던 큰아들은 끝내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가야 하는 군대라 하지만 남편의 교통사고로 형편이 어려워서 입하나 줄이려 보내야 한다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병원에 혼자 두고 온 남편걱정 잠시뒤 입대시킬 큰아들 생각 앞으로 생계를 위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기차는 서울역에 도착했고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바로 의정부로 가는 지하철로 갈아탔다


1시간쯤 지나 도착한 의정부 육군 훈련소 입구에는 큰아들과 함께 입대할 빡빡머리 아이들을 배웅하러 온 가족들과 친구들이 가득했다.


훈련병 집합을 알리는 방송이 나올 때 난 가슴이 쿵쾅 거리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큰아들과 헤어질 시간이다. 나는 큰아들을 꼭 안아 주며 말했다.


"O영아 밥 잘 먹고 훈련 잘 받고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한다. 2년 뒤 제대 할 때면 돈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도록 엄마가 열심히 돈 벌어 놓을게."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울음이 터졌다. 어린아이처럼 끄억거렸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서 눈물을 훔치던 큰아들은 억지스레 잔잔한 미소를 띠며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이제 갈게. 너무 걱정하지 마. O영아 형아 간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운동장 중앙으로 막 뛰어갔다. 큰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은 아들과 나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눈물은 계속 멈추질 않았다.


부모님이 계시는 쪽을 향해 큰절을 올리라는 방송에 따라 아이들은 일체 흙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아이들의 절을 받은 부모님들의 울음소리는 통곡이었다. 그 당시 나의 마음은 그 옛날 부모님을 산에 두고 와야만 했던 고려장에 비유하고 싶다. 사랑하는 아들을 이곳에 두고 돌아서야만 했으니.


아이들은 조교의 방송에 따라 줄을 지어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아 합숙소 같은 건물 쪽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사라진 운동장은 회오리가 지나간 듯 고요하고 쓸쓸하기만 했다. 아이들을 배웅하러 온 가족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작은 아들과 나도 집으로 돌아오는 군용 수송 버스에 올라탔다.


군용 수송 버스 안에서는 부모님들의 훌쩍대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와 작은 아들도 전염이 된 듯 우는 소리에 따라 리듬을 타며 함께 울었다. 울다 울다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덧 버스는 양산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큰아들과 셋이 문턱을 넘었는데, 해가지는 저녁에 현관문을 들어선 건 작은 아들과 나 둘 뿐이었다.


거실을 지나 바로 큰 아들이 생활하던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벗어 놓고 간 큰 아들의 운동복 바지와 티 셔츠가 침대 매트리스 위에 걸쳐져 있었다. 아침까지 사용했던 핸드폰 충전기와 손때 묻은 물건들이 책상 위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모든 건 그대로인데 없는 건 큰 아들뿐이었다.


털썩 침대에 걸터앉아 방을 둘러보다 아들이 얼마 전 대학교 오티 때 입고 간 옷과 행거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 사고가 없었다면 저 행거에 옷이 잔뜻 걸려있었을 텐데. 매일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며 거울 앞에 서있었을 텐데.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교 생활을 시작하며 1년 정도는 철없이 놀다가 어쩔 수 없이 군대를 가니 많이 했을 텐데.


내 아들은 오티만 참석하고 휴학계를 내야 했다. 대학교 등록금뿐만 아니라, 집안에 입하나 줄여서 가계에 부담이 되지 않는 최선의 선택으로 군입대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다른 부모에 비해 곱절은 슬펐던 것이다.


그 후 길에서 군복을 입은 아이들을 볼 때, 큰아들이 좋아하던 오떼오 피자와 지코바 치킨을 먹을 때, 지인들이 큰아들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냥 눈물이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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