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였다. 기분 좋은 퇴근 시간이었다. 식품회사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앞 경비실을 지날 때쯤 전화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남편이었다.
" 응~ 영아 아빠. 집에 다 와가요.”
“000씨 부인되시나요?"
남편이 아닌 모르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울산 중앙병원 응급실입니다. 남편분이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습니다 "
사고를 당한 건 남편인데, 내 몸이 마비된 것 같았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쩌지. 어쩌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은 여자들은 총알같이 뛰어가던데 나는 가만히 서있었다. 경비실 옆 담벼락에 기대어 얼마나 그렇게 서있었을까. 갑자기 아이들이 생각났다. 큰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란 아들의 목소리는 이내 곧 떨렸다. 훌쩍훌쩍 우는소리를 듣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이제 곧 대학생이 되는 아이가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동생 데리고 병원으로 오라는 말만 전하고 난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눈이 풀린 채 창밖만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도 넘어가고 날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내 마음에는 이미 해가 넘어가 칠흑 같은 암흑으로 빠지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얼 해서 돈을 버나 걱정에 사로잡혔다. 이미 남편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고 오로지 나와 아이들 생계 걱정으로 휩싸였다.
그렇게 30분을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 앞에서 내렸다. 입구에 세워진 119 구급차와 경찰차를 보는 순간 가슴이 쉴 새 없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죄지은 사람처럼 사이렌의 빨간 불빛을 보니 공포스러웠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응급실 문을 여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보았다. 다친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피가 범벅이 되어 뭉쳐져 있는 옷 들이었다.
출근할 때 입은 그의 모습이 기억났다. 원래라면 집으로 돌아와서 땀범벅이 되어 구린내만 나야 하는 옷 들이다. 내가 세탁기에 집어넣고 깨끗이 씻어 말리면 이 삼일 후에는 다시 내 남편 몸 위에 걸쳐질 옷들. 이제는 피범벅이 되어 쳐다보기도 만지기도 싫은 천 쪼가리들이 되어있다.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듯, 나는 옷만 보고 마음속으로 남편의 상태를 가늠했다.
‘어쩌지~ 정말 죽었나 보다.’
심장은 더 세게 쿵쾅쿵쾅 뛰었고 가슴이 미어지기 시작했다. 두 손을 겹쳐 내 가슴에 올려 꾹 누른 채로 아래위로 움직였다. 이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을 이리저리 굴려봐도 응급실에는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이점 또한 드라마와 달았다. 티브이를 보면 아내들이 대성통곡을 하며 등장한다. 큰 소리로 남편의 이름을 부른다. 주변에 있던 의료진들은 누가 봐도 그 사람의 아내인 줄 안다. 병원 관계자들은 그녀를 병상으로 안내해 준다. 눈물겨운 장면들이 이어진다.
나는 아직도 남편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무기력한 아내였다. 내가 남편을 찾기 위해 한 건, 조심스레 간호사님께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아~ 네~ 그 환자분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저쪽에서 심폐소생술 하고 있습니다."라는 무서운 내용이 담긴 문장을 간호사는 덤덤하게 내뱉었다. 마치 카페에서 "커피는 저쪽에서 찾아가시면 됩니다."와 같은 말투였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고 있는 남편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두 손을 모아 꽉지를 끼고 간절히 기도했다.
‘살려 주세요. 제발 우리 남편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엄.. 마.."
그때 두 아이들이 왔다. 벌써 발갛게 토끼 눈이 되어 온 아이들은 피범벅이 된 아빠 옷을 본 순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빠 옷인데 ~ 아빠! 아빠! 아빠!!”
역시 피범벅이 된 옷이 주는 공포감은 막대했다. 다친 환자를 보는 것보다 더 컸다. 나도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주변 사람들도 안타까운 듯 눈물을 훔치며 우리를 달래기 시작했다.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큰소리로 말했다.
“남편분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를 저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 님이셨다.
“엄마! 우리 아빠 이제 살았지? 안 죽는 거지?”
“응. 살았어!”
우리는 서로를 보며 눈물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에 이보다 고마운 일이 없다 여기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남편의 고통스러운 고함 소리마저 노랫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반가웠다. 직접 걸어가 남편의 처참한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분명 노랫소리였다. 그의 다친 몸을 보는 순간 노랫소리가 곧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통곡의 소리로 바뀌었다.
"아~으아~아~ 아~으아”
응급실 문이 열리고 침대에 실린 채 남편이 들어왔다. 우리는 뛰어가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을 보았다. 차가 충돌하며 깨진 유리 파편들이 남편 얼굴에 빼곡히 박혔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피가 굳어서 덕지덕지 몸에 붙어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특수 분장을 한 사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으스러진 몸을 조금씩 움직여 보던 남편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고함을 질러 댔다. 소리만 들어도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영아 아빠! 나야. 눈 떠봐.”
"아빠! 아빠!”
나와 아이들은 애타게 아빠를 불렸다. 진통제의 힘으로 조금씩 안정을 취한 남편이 마침내 눈을 스르르 떴다.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의 상처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피와 주르르 흐르는 눈물이 섞여 피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이 심심찮게 하는 말 중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피눈물을 흘려가며 노력했습니다.’라는 문장이 생각났다. 나는 행여나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런 표현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진짜 피눈물을 흘리는 상황을 목격하면,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못 한다. 살면서 피눈물은 절대로 흘리면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