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친정 엄마는 전화 연락을 자주 하신다.
친정 엄마는 나보고"결혼을 참 잘했다" 남편을 보며 " 그런 사람 없다 " 하신다.
내가 죽을 만큼 힘들 때 외면하며 본인말 안 듣고 내 멋대로 살아서 그렇다고 타박을 하시던 엄마가 요즘 이런 말을 하실 때면 그냥 헛웃음이 나온다.
시어머니도 내게 자주 전화를 하신다. 그리고는 대뜸 "너무 외롭다. 우리 손주들 너무 보고 싶다. 언제 한번 올 수 있나?"라고 말씀하신다. 항상 같은 말씀을 하시며 아이처럼 칭얼 되신다.
그들을 생각하면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예전에 우리 가족이 힘들 때는 우리가 전화라도 한 통 드리면 혹시 도움이 필요해서 했나 싶어 매정하게 대하셨다. 죽을 만큼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만큼 힘들었다) 힘들 때 그렇게 외면하시더니. 내 남편이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간호하느라 내가 병원에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일 때 우리 두 아들은 집에 남겨졌다. 병원에 와서 나를 도와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두 아들 밥 굶지 않게 끼니나 챙겨줬으면 했다. 두 분 중 아무도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다. 사정이라도 있으면 이해라도 하지. 그건 그냥 그저 외면이었다. 그런데 지금 손주들 보고 싶다고, 왜 자기를 보러 오지 않으냐고? 하. 헛웃음만 나온다. 나와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이웃집에 밥동냥을 하러 다닐 때 한 번이라도 발걸음을 해주셨으면 어땠을까? 아마 우리 가족은 다 같이 할머니집에 열 번은 더 다녀왔을 거다. 그래도 노쇠한 그녀의 음성을 듣고 나면, 화는 누그러지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수화기 너머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저 "아~~ 예... 네, 그래요. 다음에요."라는 말뿐이다.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리고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간다. 물론 찾아뵐 생각은 전혀 없다.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해도 두 부모님과 통화가 끝날 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날이 떠올라 한동안 한숨을 멈추기 어렵다.
20년 전 남편이 사고 났던 그날이 아직 생생하다.
의식이 돌아온 후 남편은 응급실에서 6인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간호사님이 병실로 들어왔다.
"내일 아침 7시에 수술 들어갑니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 지금 입고 있는 옷들을 다 벗기시고 환자복으로 갈아입히셔야 합니다."
뼈가 으스러져 꼼짝 할 수 없는 남편의 몸을 꼼꼼히 살펴보신 간호사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환자분 상태를 보니 아내분 혼자서는 힘들 것 같네요. 다른 가족분들께 연락을 드려 도움을 받으셔야겠어요."
정말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저녁 메뉴를 고민했는데, 지금은 가족들 중 누구에게 연락할지 고민이다. 아니, 사실 연락을 해야 하나부터가 고민이다.
살면서 '갑자기'라는 불청객을 만났을 때, 남들은 가족 예를 들면 부모, 형제, 자매, 그리고 사이좋은 친적들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한다. 나와 남편에게도 혈연으로 맺은 가족은 있었다.
남편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곤히 자고 있다. 물론 진통제의 힘을 빌려 자는 거다. 곧 깨어나면 얼마나 아플까. 걱정을 하며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병실에서 나왔다.
복도끝쪽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찾아갔다.
창문 밑 모서리에 있는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떨구며 "휴~우" 긴 한숨을 내뱉었다.
나의 손은 전화기를 마사지하듯 하염없이 주무르고 있었다.
누를까 말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전화기 버튼을 눌렸다.
저녁 9시. 친정 부모님은 분명 잠든 시간일 거다. 시골에서 농사를 하시기 때문에 지금은 그들에게 한밤중이었다.
"어~~ 어~ 여보세요~~"
예상대로 엄마 목소리는 비몽사몽이다.
"엄마?"
"응... 어~연이가. 이 시간에 웬일이고? "
"저... 영아 아빠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어."
"뭐라고.. 많이 다쳤나? "
"응 많이 다쳤어... 흐으~~ 꺼어~으어~"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이구 속상해서... 그만 울고~~ 어쩌다가 어디를 다쳤나"
"퇴근길에 마주 오는 덤프트럭이랑 충돌했는데 팔이랑 다리 쪽이 다 부서졌어."
"뭐가 급해서! 조심해서 운전하지 않고~~ 어이구~속 터져라~ ~~ 허이고 참나~~"
전화기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연아"
엄마와 통화 소리에 잠이 깨신 것 같았다.
"네"
"강서방 많이 다쳤나? 네가 많이 놀랬겠다."
난 아버지께 남편의 상태를 설명하며 환자복을 함께 갈아입힐 사람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청했다. 이게 오밤중에 그들의 잠을 깨워서라도 통화해야 됐던 이유였다.
'아.. 맞다. 오려면 버스 타고 오시는 분들이라 바로 못 오시지..'
그때 안동 시골에 사시는 내 친정 가족들은 자기 소유의 차가 없었고, 지금처럼 카카오택시도 없었다. 시외버스가 끊긴 시간 이후에는 갑작스러운 이동이 불가능했다. 아버지는 생각을 하시더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으셨다. 일단 내일 일찍 오빠한테 연락해서 아침 일찍 첫차로 보낸다고 하셨다.
"연아, 환자 돌보려면 힘들겠지만 애들도 있으니 네가 힘을 내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환자복을 갈아입히는 데는 도움을 못 받았지만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위로를 전해 들으니 용기가 났다.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엄마 목소리가 다급히 들렸다.
"연아! 시댁에는 연락했나? "
"아니. 5년 동안 한 번도 연락 안 했는데.."
(5년 동안 연락 안 한 사연은 2편에 나옵니다.)
"그래도 연락해야지. 아들이 다쳐서 저렇게 누워 있는데! 아이고!! 부모말 안 듣고 학교도 때려치우고 그 꼬락서니로 살라고. 허어? 그런 집에 시집가서 그런 대우받고 살려고 내속을 그렇게 썩였나. 속이 터져 죽겠다!
어이구 ~~ 휴~~ #@0%^&*&*&#$%*&$# (그녀가 내뱉은 ㅆㅂ들어간 말들은 차마 옮길 수 없네요)."
"그만해라. 지금 또 그 말이 왜 나오는데..."
"전화 끊는다!"
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