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by 박희정

집밥. ㅡ


직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어느 날,

칭찬 하나를 하려다 순간 난처한 상황을 맞았다.

식당 이모님께서 매일 준비해 주시는 음식이 고마워서,

나름의 방식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다른 동료들도 “이모님 맛있어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지라.

나도 인상 깊은 말을 보태고 싶었다.


“이모님 음식은… 누구나 부담 없이 잘 먹는 맛이에요.

자극적이지 않아서 누구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잖아요.”


싫어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옆자리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은 칭찬이 아닌데요 그냥 특색이 없다는 거잖아요.”


그 말에 잠시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특색 없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이모님의 음식은 딱히 눈에 띄게 강한 맛이 아니다.

강렬하지도 않고,

기억에 오래 두고 두는 맛은 아니다.

밖에서 먹는 음식처럼 달거나 맵거나 입에 착 감기는 감칠맛이 아니다.

그런데도 점심 먹을 걱정이 없다.

그냥 잘 먹으면 된다.

강하지 않지만 맛있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음식을 대중식당에서 팔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손님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특색 없다는 건 상업적으로는 약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뚜렷한 개성과 확실한 감동을 원한다.

자극적일수록 중독적일수록 다시 찾게 된다.

그래서 ‘맛집’을 찾아다닌다.

단둘이 밥을 먹을 일이 생겨도 휴대폰을 꺼내 검색한다.

새로운 맛 평점 높은 식당 SNS에서 핫하다는 장소를 찾아 몇 정거장을 기꺼이 넘긴다.

식당을 나서면서는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한다.

그러면서도

“집밥 먹고 싶다.”라고 한다.


특별한 맛도 없고 화려한 플레이팅도 없지만 집밥을 찾는다.


물과 공기와 같기 때문이다.

너무 흔해서 특별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꼭 필요한 것 없으면 허기진 것.

자극적인 음식은 한 끼의 기쁨이다.

가끔의 기쁨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매일 먹을 수는 없다.

공기가 향기를 가졌더라면

그건 고문이었을 것이다.

집밥은 하루하루 삶을 지탱해 주는 지속 가능한 맛이다.


식당에서의 대화는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칭찬으로 받겠다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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