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박희정

풀. ㅡ


오월도 중순을 훌쩍 넘겼는데,

날씨가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다.

요즘 들 일하는 이들 사이에선 날씨 이야기가 인사처럼 오간다.

예전 같았으면 해가 뻗치고 땅이 데워져, 모종 심고 김매느라 바쁠 때인데,

올해는 기온이 오르질 않으니 작물들이 속을 썩인단다.

“이래선 감자도 물러터지겠어.”

“모가 올라오긴 하겠어? 밤엔 서늘해서 애들이 얼어붙겠던데.”


며칠 전 한 분이 밭을 다녀와 이런 말을 들려줬다.

“작물은 안 자라고 풀만 무성하더라고.”

그 말엔 짙은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결국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체념 같은 것도 묻어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던 다른 분이 한마디를 보탰다.

“그래 풀도 안 나면 큰일이지.”

그 말이 어쩐지 귀에 쏙 들어왔다.


흔히 쓸모라는 눈으로 세상을 본다.

농작물은 ‘쓸모 있는 존재’고, 풀은 ‘제거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풀조차 자라지 못하는 땅이라면,

그건 죽은 땅이다.


풀은 뽑히고 밟히지만

그것이야말로 생명이 깃드는 땅의 표식이다.

풀도 안 나면 사막이다.


때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것들이

세상을 살리는 징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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