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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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일여니, 동정일 여니,
낯선 말들이지만,
어쩐지 오래된 정적을 불러올 것만 같은 말이다.
불교수행을 할 때 쓰인다는 이 말들 속엔
삶과 마음을 꿰뚫어야 할 시선이 있을 것 같다.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메 일여(寤寐一如)
그저 고요한 선승의 이야기 같지만,
이런 상태를 가장 가까이서 겪는 사람들은 바로 글 쓰는 사람들 아닐까?
소설을 쓰는 이들은 상상의 인물이 현실처럼 움직일 때까지,
끝없이 그를 따라가고 떠올리고 상상한다.
흐름을 따라가며 인물을 성장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번번의 작품마다 그렇게 한다.
현실과 상상이 얽히고 밤과 낮의 경계마저 흐릿해질 때까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들이야 말로 동정 일여를 하는 수행자들일지도 모른다.
짧은 한 줄을 위해 며칠을 품는 때가 있고,
일필휘지의 손놀림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몇 날을 품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마음 한편 에두는 것이 다름 아닌 화두인 샘이다.
창작을 하는 작가라는 직업일 뿐이지 수행이나 다름없다.
나도 경험해 봤다.
좋은 영감이 떠올랐지만 글로 풀어내지 못하고 며칠을 끙끙거렸다.
일을 하고는 있지만 생각은 놓지 못한 채.
어느 날은,
꿈속에서 너무도 완벽한 시 한 편을 썼다.
단어 하나하나가 맥을 짚듯 이어졌고 문장은 음악처럼 흘렀다.
꿈속의 나는 뿌듯했고 환희에 차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시는 온데간데없었다.
기억은 조각조각 흩어졌고 감정만 충만했다.
남은 건
간절함만 남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수행자는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게 수행의 길을 걷는 일인지도 모른다.
깨어 있을 때도 잠들었을 때도,
마음 한 자락을 글에 붙들어 두고 살아가는 일.
그렇게 생각은 꿈속에서도 시가 될 때가 있다.
글을 쓴다는 건,
세상과 나 사이의 경계를 없애는 일이다.
현실과 상상이 겹치고 낮과 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
몽중일여는 멀리 있지 않다.
깊이 몰입한 마음은 수행이 되고,
간절한 열망은 꿈마저 품는다.
그리고 꿈은 언젠가 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