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의 풍경 속에 아이 하나가 있었다.

by 박희정

노을의 풍경

노을이 싫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 질 무렵이면 쓸쓸해지던 마음이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몸 어딘가 바람이 통과하는

느낌이랄까.

좋지만 서늘해지는 마음,

그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모르지만

해가 질 때쯤이면 가끔 고개를 들었다.


어른들을 기다리며

마루 끝에서 바라보던 해 질 무렵 풍경이 참 쓸쓸했다

어린것이 무얼 그렇게 안다고.

해 넘어가는 산을 바라본다든가,

발가락 끝으로 노을을 건드리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야 가족이 올 테니까.


가족이 모두 모인다 해도 조용한 집,

불러도 대답할 사람이 없었다.

사실 부를 이름이 빠져 있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 고요함이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른이 되면 이 막막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성장하면서 두고두고 느껴지던 것이 외로움이었다.

할머니와 고모들의 사랑은 차고 넘쳤지만,

그럼에도 가슴 한쪽은 비어 있었다.

비어있는 줄도 모르고 비어있는,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는 ‘엄마’, ‘아버지’라는 두 단어. 그 흔한 말이 내 입에서는 나오지 못했었다.

불러보지 못한 단어들은 내 안에서 화석처럼 굳었고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될 때까지도 그렇게 내게 없는 것이었다.

알지 못했지만 알 수 없는 공허감.

노을을 보면

하늘이 붉어질 때마다 외로움이 되살아났다.


8-9세 무렵이었을 것이다.

잠결에 숨이 막혀 의식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고,

할머니는 어린 나를 등에 업고 면 소재지의 약방을 향해 십 리 길을 뛰다시피 하셨다.

한밤이었으니 거리는 어두웠고,

면소재지에 간단들 약국 주인이 있을 리도 없었지만 뭐라도 해봐야 한다는 심정에 나선 것이다.


가는 길에 할머니가 다니던 작은 교회가 있었다.

그 밤, 할머니는 불 꺼진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 나를 바닥에 눕혔다. 땀과 눈물이 뒤섞인 얼굴로,

손자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셨다.

그 기도에 응답을 하셨던지

다행히 편안한 숨을 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즈음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조용했다.

몸은 멀쩡했고 숨도 평온했다.

낯선 교회에 나 혼자였다.

할머니는 해가 떨어질 즈음에 약을 들고 오셨다.

여차 저차,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외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쩌면 노을에 쓸쓸함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는지 모르겠다

전에 보던 노을의 외로움과 훗날의 노을이,

외로움이 되었다는 것을 나이 들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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