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신.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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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흐름,
신이 있을까.
어릴 적엔 교과서나 교회 안에서만 신을 만났다. 사람들은 신을 말할 때 으레 ‘어떤 존재’를 상정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의지를 갖고 인간을 돌보는 초월자, 혹은 온 우주의 섭리를 주관하는 지성.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개념화된 신, 이름을 가진 신, 믿음을 요구하는 신이 아니라 —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설명되지 않지만 무언가를 흐르게 하는, 그런 ‘무형의 질서’ 같은 것.
살다 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왜 하필 그때였는지, 왜 그 사람이었는지, 왜 나였는지.
이성은 자꾸 질문을 만들어내지만, 삶은 묵묵하다.
그게 이름 없는 신이 말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명주실을 꼬아 긴 줄을 만들면
언젠가 연 띄울 일이 생기고,
간간이 연습했던 악기가
몇 해 뒤엔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쓸모없이 지나간 줄만 알았던 시간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어떤 문을 열어주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인간이 목적 없이 한 일들마저
결국 어떤 맥락 속에서 제 쓰임을 갖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신의 작용이 아닐까.
어쩌면 거대한 짜임의 한 조각이나.
전체의 무늬를 보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내가 걷는 이 소소한 걸음들이
모두 어떤 설계 안에 있다는 예감.
그 예감이, 내가 믿는 신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