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길 찾는 길 ㅡ길 위에서 마주한 평안함

by 박희정

길 위에서 마주한 평안함


불가에서는 깨달음을 끊임없이 탐구한다.

깨달음은 모든 이가 필요로 하지만, 그것을 얻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깨달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그 질문에 선뜻 “깨달으면 이래.”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은 그 깨달음이라는 것을 잠깐이라도 마주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있더라도 자각하지 못하는 수도 있고,

깨달았고 깨달은 방식으로 살아가면서도 그것 마쳐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사라 가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깨달음이란, 일상의 평안함이다.”


나는 그걸 잠깐이나마 일별해 본 경험이 있고.

알았다는 것을 알기도 했다.

그 느낌을 붙잡고 살아보다 보니,

수년이 흐른 어느 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깨달음은 평안함이구나.”


사람들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건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하루에도 수만 가지 상상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그 상상은 고통, 질투, 분노, 충동, 좌절 같은 감정을 불러온다.


하지만 그 마음을 잠잠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때부터 조금씩 — 혹은 어느 날 갑자기 —

안정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걸 나는 어느 여름날, 우연히 체감했다.

길거리에서 아내를 기다리던 중,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시원했다.


그 순간,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누가 시원하다고 느끼는 거지?”


피부가 감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마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감각이었다.

마음이 없다면, 그 바람의 시원함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조금씩 ‘나’를 찾는 쪽으로 길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생각이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도구인 동시에

고통과 질투, 근심, 분노의 뿌리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생각을 좇지 않으려 한다.

분노가 일어나면, 그 분노를 그저 바라본다.

쫓아가면 분노는 더 커진다.


그렇게 바라보는 단계 — 나는 그것을 **‘초견성’**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더 깊은 물음이 있다.

“왜 생각을 따라가지 말아야 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을 따라가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분노가 일어날 때마다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때로는 통제하려는 마음마저 잊는다.

물론, 나중에 후회하며 돌아보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일상이 평화로우면, 삶은 저절로 안온해진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마른자리 골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조심조심 살아온 것처럼

생각도 좋은 놈만 골라 밟으면,

불안·우울·고통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다.


근심을 부르는 생각,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은

절대 쫓아가지 않으면 된다.

쫓아가더라도 알고만 있으면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 한두 가지 병은 함께 간다는 걸 알면 되고,

한두 곳은 낡아서 통증이 온다는 걸 알면 그만이다.

아픈 것은 고쳐서 가면 되고,

못 고치면 함께 가면 된다.

그걸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알면 생각을 멈추면 된다

멀리 따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추면 된다.

멈추어서, 멀리 바라보면 된다.


그 자리에 평안이 있을 것이다.


혹 누군가는 깨닫겠다고 기행을 하기도 하고,

깨달았다고 또 기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깨달음 전후에 본질적인 변화는 없다.

단지 고통스러운 것을 쫓지 않을 눈이 생겼을 뿐이다.


눈이 생겼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눈은, 누구에게나 본래부터 있었다.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것이

달리 대단한 것이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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