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고봉밥

by 박희정

총량의 법칙. ㅡ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균형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총량의 법칙’이라 부른다.

나는 그 법칙이 욕망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식욕, 색욕, 수면욕을 ‘욕심’이라 말하지만,

타인의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의 몸이 요구하는 만큼 먹고, 쉬고, 사랑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다.


물을 적게 마셔도 잘 자라는 식물이 있고,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식물도 있다.

보리는 적은 물에도 잘 자라 마른땅에서도 뿌리를 잘 내린다.

보리는 죽어버리지만 벼는 물속에서 더 잘 자란다

벼가 물속에서 자라는 것은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것이 생존에 필요한 조건일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는 사람은

많이 먹고, 많이 자야 한다.

많이 움직였으니 많이 먹고 많이 쉬는 것,

그것이 이치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욕심이라 부른다.

그걸 용납 못하는 눈이 그렇게 부른다.


한 남자를 보았다.

칠십을 넘긴 나이, 그러나 그의 몸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새벽 네 시,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지만

아무도 없는 건물을 쓸고,

화장실을 닦고, 주차장을 정리한다.

여섯 시, 경매가 끝나면 과일을 정리하고,

자신에게 배정된 가게마다

물건을 배송하는 일까지 마쳐야 한다.

점심 전까지 보내줘야 그곳에서도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의 아내가 도시락을 싸 주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나야 출근하면 먹을 게 많으니 걱정하지 마.”

그러나 새벽 시장에 먹을 만한 것은 없다.

과일을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에게 과일은 ‘일이다.

그가 과일을 평가하는 눈은 경매사 못지않다.

배송하는 물건의 질에 따라 가게의 평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허기를 안은 채 일을 마친다.

그리고 점심시간,

고봉으로 푼 밥 한 그릇이

수 시간 만에 마주하는 음식이니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를 보고 젊은이들은 수군거린다.

“어르신, 밥 참 많이 드시네.”

그들은 아침 여덟 시에 출근해

열 시면 간식을 찾는다.

노인이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에서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노동으로 에너지를 태운 사실은 모른 채.


많이 움직이면 많이 먹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상식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현상만 본다.


욕심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욕심이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데도 더 가지려 하는 것이지,

노인의 밥 한 그릇이 욕심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삶의 방식이며,

그가 감당해야 할 삶의 근원 에너지다.


욕심과 필요를 가르는 것은 단순한 양이 아니라

삶의 무게에 따라 다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인생은 내 힘만으로만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