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작용.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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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 말하는 그런 신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의 삶을 일일이 설계하며, 기도에 따라 복을 주거나 벌을 내리는
그런 신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결코 내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느낀다.
분명 내가 선택하고, 노력하고, 책임을 지지만,
그런데도 가끔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힘이 작용하는 듯한 순간을 만난다.
막다른 길이라 생각했는데 또 다른 길이 열릴 때가 있다.
‘절처봉생(絶處逢生)’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끝이라 여긴 자리에서 다시 생이 움튼다는 그 말.
얼마 전 이상한 꿈을 꾸었다.
딸이 아파트 베란다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자살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나는 놀라 소리쳤고,
그 충격에 잠에서 깼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쩌다가 시간내고
짬 내서 제주 여행을 가게 되었다.
때를 잘못 선택했던지 아니면 봄이 찾아오려고 산천에 다짐질을 하던 중이었던지,
비는 내렸고 여행은 난관이었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날 어린 손녀들을 데리고 여행하자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잠깐 카페에 들렀다가,
또 잠깐 식당에 들렀다가,
여행을 하는 것인지 어린 새의 날기 연습인지
여기 들렸다가 저기 좀 들렸다가
계획대로 여행은 되지못했다.
결국은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
여행이라기보다는 방황에 가까운 하루였다.
밤이 되고,
엄마와 딸이 맥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 자연스러웠다.
주말 부부인 딸이 하는 말이
아이들이 밤에 울면 자기도 같이 울었다고
잠을 못 자니까 더 서러웠다고,
우리도 일 마치고 딸 집에 퇴근해서 아이들 돌봐주고 집안 살림 도와주고
그렇게 나름 도움을 준다고 애썼는데,
딸은 우리의 도움이 부족하게 느껴졌던가 보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가벼운 말은 아니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이와 함께 울었을까.
우리는 직장을 마치고 나름 도와주려 애썼다.
도울 수 있는 만큼은 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듣던 아내도
“그렇게 말하니 좀 서운하네.”였다.
나는 그 마음도 이해가 갔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여행이 없었다면.
그 밤의 맥주 한 잔이 없었다면.
딸이 그 말을 꺼내지 못한 채 혼자 삭이고 있었다면.
그 아이는 얼마나 더 깊이 외로워졌을까.
그 순간, 오래전 꾸었던 그 꿈이 떠올랐다.
베란다에 걸터앉아 있던 딸의 모습.
물론 현실과 꿈을 억지로 이어 붙일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느꼈다.
무언가가 우리를 그 자리로 데려다 놓았다는 느낌을.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배열해 둔 것처럼.
나는 여전히 신이 있을 거라는 것은 믿지 않지만,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은 느낀다.
그런 힘이 신이라면
그것은 신이다.
딸도 아내도,
나도 서로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인생은 내 힘으로만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