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아지

by 박희정

속이 넓다는 것, 열기를 다스리는 기술


황량한 사막 어딘가에서 '탕, 탕, 탕' 총성이 울린다. 총잡이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향해 입술을 모으고 '후-' 하고 바람을 든다.

서부 영화의 단골 장면이다. 그가 화약 연기가 매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저 폼을 잡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다. 그것은 달궈진 총신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생존의 몸짓이다. 식히지 않고 덥석 품었다간 제 살점부터 데일 판국이니 말이다.

나는 여전히 철이 덜 들었는지 만화영화가 참 재미있다. <톰 소여의 모험>부터 <검정 고무신>, <톰과 제리>까지 챙겨보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사냥꾼의 장총이 불을 뿜다가 열을 이기지 못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모습이다.

성능에 비해 그 열기를 감당할 '속'이 부족했던 탓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매한가지다. 가끔 주위에서 "이 밴댕이 소갈딱지야!"라는 핀잔을 듣곤 한다.

밴댕이는 속이 워낙 좁아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찰나, 제 화를 이기지 못해 죽어버린다.

갈치, 멸치, 꽁치도 비슷하다. 어찌 된 게 이름 끝에 ‘치’ 자가 붙은 녀석들은 성질이 급하고 명줄이 짧다. 생김새에 비해 창자가 작아 속의 열을 식힐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만화 속 녹아내리는 장총처럼, 제 열기에 제가 타버리는 셈이다.

반면 독종이라 불릴 만큼 끈질긴 놈들도 있다. 잉어나 가물치처럼 속이 넓은 것들은 물 빠진 저수지 진흙바닥에 머리만 박고도 3년을 버틴다니 그 너름이 가히 경이롭다.


옛사람들이 "찬물 먹고 속 차려라"라고 했던 말은, 분수에 넘치는 것을 탐하는 이에게만 하는 경고가 아니다. 속이 좁아 사소한 일에도 버럭버럭 화를 내는 이들에게 던지는 처방전이기도 하다.

속이 널널한 사람은 쉽게 끓어오르지 않는다.

"오냐, 잡아 잡수려거든 잡아 잡숴" 하는 식의 진득한 여유가 있다.

그런 사람 곁에는 자연스레 존경의 마음이 모인다. 반면 화드득화드득 금방 달궈지는 이들은 주변 사람마저 데게 만든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찬물 한 사발의 여유다.

화(火)가 강할 때 수(水)로 다스리는 것, 그것이 바로음양의 조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단 차분해져 볼 일이다.

물론 너무 가라앉아 침잠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제 열기에 녹아내리는 존재의 가벼움은 면해야 하지 않겠나. 오늘 누군가에게 화가 솟구친다면, 총구를 불던 총잡이의 마음으로 시원한 냉수 한 잔 들이켜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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