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의 마지막 비행

by 박희정

달콤한 유혹, 어느 벌의 마지막 비행


꽃들이 채 기지개를 켜기도 전인 초봄이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꿀벌 한 마리가 내 주위를 잉잉거리며 맴돌았다. 아직 산천에 꽃이 귀하니, 녀석은 허기를 이기지 못해 헤매고 있었으리라. 마침 마시던 포도맛 탄산음료의 인공적인 달콤함이 녀석의 굶주린 감각을 깨운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귀찮은 듯 손을 휘저으며 쫓아냈지만, 필사적인 벌은 물러서지 않았다. 가여운 마음이 들어 음료 몇 방울을 바닥에 톡톡 떨어뜨려 주었다. 벌은 주저 없이 달려들어 그 붉은 액체를 빨아올렸다. 신기하게도 액체를 머금은 벌의 잘록한 허리가 투명하게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포도향 색소에 물든 그 빛깔이 마치 녀석의 열정처럼 선명했다.

배를 채운 벌은 다시 기운을 내어 날아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곳을 지났을 때, 나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벌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한쪽 방향으로만 위태롭게 원을 그리며 날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날갯짓은 눈에 띄게 불안정했고 균형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그 몸짓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처절한 의지처럼 보였다.

작은 원을 그리던 비행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숫대야만 한 크기로 좁아졌다.

몇 시간 동안 멈추지 않던 날갯짓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에야 겨우 잦아들었다. 기력이 다한 것일까, 아니면 숨이 멈춘 것일까. 벌은 미동도 없이 찬 땅바닥에 몸을 뉘었다.

이 밤이 지나면 서리가 내릴 텐데.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채 차가운 어둠 속에서 굳어갈 녀석을 보며 나는 빈 캔의 성분표를 읽어 내려갔다.

인간에게는 맛있는 음료였지만, 작은 벌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돌아가고 싶어 했던 벌의 마지막 날갯짓이 귓가에 남는 서늘한 봄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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