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 그 지독하고 푸른 고집에 대하여
보리라고 하면 흔히들 꿩이 알을 품는 봄날의 서정이나, 연인들의 사랑이 농익어 쓰러지는 몽글몽글한 감성만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보리는 결코 그토록 보들 보들한 존재가 아니다.
보리는 남들이 제 몸의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뼈대만 남기는 계절, 뼈마디가 시린 살얼음이 땅을 파고들 때 비로소 푸른 싹을 틔운다.
그 성깔 또한 예사롭지 않다.
발로 꾹꾹 지르밟을수록 오히려 보란 듯이 꼬장꼬장하게 고개를 쳐든다.
소나무나 대나무처럼 내로라하는 기개 있는 것들이 푸르름을 뽐낼 때, 저 또한 한쪽 구석에서 지지 않고 푸른빛을 발하니 그 질긴 성질머리는 누구도 말릴 재간이 없다.
그 고집스러운 성미는 사람의 품 안에서도 여전하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 보리 까끄라기는 옷 속에 들어가면 기어이 살결을 타고 위로 꾸역꾸역 치고 올라온다. 입안에 들어간 놈을 뱉어내려 해도 녀석은 더 깊숙한 안쪽을 향해 파고든다. 그럴 때면 짜증이 솟구치다가도, 엄동설한을 뚫고 나와
한 세상을 악착같이 버텨낸 그 ‘꼬라지를 생각하면 차마 나무랄 수가 없어진다.
사실 그 지독한 고집의 끝은 언제나 사람의 허기를 향해 있었다. 보리는 제 몸이 채 영글기도 전인 이른 봄, 부드러운 새싹일 때부터 냉이와 함께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이 되어 사람의 속을 달랬다.
알이 조금 통통하게 살이 오르면 아이들의 손에 붙들려 불속으로 뛰어들었다.
얼굴이 새카맣게 타는 줄도 모르고 후후 불며 먹던 낱알들은 궁핍했던 시절 아이들의 큰 위안이었다.
가장 귀한 것은 먹을거리가 바닥난 절망의 순간 춘궁기라는 때에 드러났다. 모두가 굶주림에 허덕일 때, 보리는 제 목숨을 내어 생명을 살리는 귀한 곡식이 되었다.
제 몫을 다하기 위해 그토록 모질게 겨울을 나고 발길질을 견뎌냈던 것일까.
그 꼬장꼬장한 고집이 있었기에, 수많은 민중들은 비로소 그 질긴 ‘보릿고개’를 넘어갈 수 있었다.
먼 옛날의 기억 속에서, 푸른 보리밭은 여전히 바람에 일렁인다. 억척스럽게 살아남아 기어이 누군가를 살려내고야 마는, 그 지독하고도 푸른 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