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눈이 내린 테라스 : 영역과 안락의 대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바람이 추녀 끝을 스치면서, 매달린 풍경은 자지러질 듯 비명을 질렀다.
명산의 기운이 도심의 콘크리트와 만나는 경계. 그곳에는 고즈넉한 산사 대신 목탁과 징 소리가 망자의 넋을 기리는 이질적인 절집이 있었다.
그 적막을 깨는 것은 절집의 야간 경비원이자 절대 권력자인 개,
‘복실이’의 포효였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고양이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왜냐면 그는 묶여 있기 때문이다.
복실이는 가슴을 두드리며 통탄할 일이지만 어쩔 수없다
지역의
평화는 담장 너머 마트 가 들어서면서 균열이 갔다.
버려지는 고기와 생선 대가리를 차지하기 위해 야생의 고양이들이 몰려들었고
밤마다 벌어지는 서열 다툼은 치열했다.
묶여 있는 복실이의 밥그릇 앞까지 난입해 난투극을 벌이는 고양이들에게,
복실이의 으르렁거림은 안중에도 없었다.
며칠간의 패싸움 끝에 검은 고양이가 우두머리로 등극하며 야생의 질서가 잡히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탈이 있었다.
검은 고양이를 따르던 무리 중 ‘흰 줄무늬 고양이’가 사람의 영역인 테라스를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그들 세력 속에서도 가장 뒤 쳐져 있었을 뿐 아니라 아직은 야생의 악 착이 스며들지 못한 상태였다. 다른 고양이들이 어떻게든 자기 먹을 것을 찾아내는 반면 힌줄고양이는 남들이 먹고 남아야 간신히 먹을 수 있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를 간신히 어쩔 수없이 유지 중이었다.
검은 고양이는 그 이탈을 묵인했다.
침입자를 막고 세력을 넓히느라 바쁜 야생의 우두머리에게, 안락을 찾아 떠나는 동료의 뒷모습은 관심 밖이었을지도 모른다.
흰 고양이는 빠르게 길들여졌다.
사람의 손길과 따뜻한 사료, 그리고 테라스 한쪽의 아늑한 집. 눈이 쏟아지던 밤, 굶주린 동료들이 자신의 거처를 기웃거리며 남은 사료를 훔쳐 먹을 때도 흰 고양이는 집 안에서 숨을 죽였다.
그는 한쪽에 미지근하게 담그고 있던 야생의 야성을 버리고 인간의 가족이 되는 쪽을 택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다른 고양이들이 흰 고양이 근처에 오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힌 고양이의 안락은 완벽해 보였지만 그 호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 눈 내리던 날,
줄을 끊고 절집을 빠져나온 복실이가 테라스의 흰 고양이를 덮쳤다.
자신의 영역을 유린하던 고양이들에 대한 응징이
가장 약한 표적을 향해 폭발한 것이다.
하얀 눈 위로, 붉은 눈이 내렸다.
안락의 대가는 참혹했다.
숲 속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고양이 무리의 눈빛 위로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망자의 넋을 기리는 염불 소리처럼 풍경이 다시 울었다.
복실이는 영역 사수의 한풀이는 했을지언정,
다시 묶여 지내는 상태가 되었다.
그날 이후 다시 거리를 횡보하는 당당한 모습은 볼 수 없었으니까 그는 묶여 있는 게 확실했다.
피로 물든 눈밭 위에는 오직 정적만이 남았고,
안락과 야성 사이의 위태로운 경계는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