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돗개, 이리

by 박희정

이리(伊利)


녀석이 없는 빈 이불 위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갔다.

녀석이 사라진 지도 벌써 한 두 주일이 지나는 중이다.

진도에서 데려온 아이,

특별히 진돗개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어쩌다 인연이 되어서 데려온 아이인데 이름을 이리라고 불렀다.

생긴 모습이 얼추 이리나 늑대 같은 모습이라는 상상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리’는 좀 자유로웠다.

그때만 해도 동네에 떠돌이 개들이 있었고 개장수도개삽니다를 외치며 돌아다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경이지만,


강아지 때부터, 아니 훌쩍 자란 후에도 가끔씩 집을 나갔다.

하지만 이번처럼 긴 침묵은 없었다.

예전에도 일주일 정도 행방이 묘연했던 적이 있었다. 온 동네에 벽보를 붙이고 뒷동산 산책길을 샅샅이 뒤진 끝에, 누군가 나무에 묶어둔 녀석을 발견했었다.

그때 녀석을 발견했을 때는 거의 거리의 노숙견 행색이 되어 있었다.

다만 주인을 알아본 이리가 반가워서 환장을 하는 모습이 그래도 녀석에게 주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는 것뿐이다.

그뿐이다 부랑견이 아니라는 표식은.

이리는 개 중에서도 참 잘생긴 개였다.

맑은 흰색 털에 대나무 잎처럼 쫑긋한 귀, 그리고 단단하게 갈라진 근육질의 다리. 마당에서 자유롭게 지내던 녀석은 대문만 열리면 번개처럼 튀어나갔다 제 영역을 순찰하듯 동네를 종횡 질주하고 나서 지치면 돌아왔다.

밖에서의 이리는 칼 없는 망나니였다.

영역을 표시하느라 바빴고, 등굣길 여학생들의 스커트 자락에 코를 들이밀며 킁킁거리는가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엉덩이를 둥개둥개 흔들면서 멀찍이 가버리는 시크한 녀석이었다.

한 여자에게 미련 두지 않았다.

지나가는 다른 여학생에게도 쫓아가서 코를 내밀었다.

남자에게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수놈이다.


옆 여자고등학교에서는 녀석에게 ‘미친개’라는 별명을 붙였고, 교장 선생님은 급기야 ‘개 주의보’까지 내렸다.

어떤 학생은 녀석과 장난을 쳤지만,

심약한 학생은 기겁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럴 때면 이리는 “왜 저래”라는듯 난감한 낯빛으로 힐끗 돌아보고는 떠나 버렸다.

그렇다고 입질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혈기가 왕성해지면서 녀석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거리의 떠돌이 개들과 대대적인 싸움이 벌어졌고, 도로는 그야말로 개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그 상황을 본 이들로부터 들었다.

다리를 못쓸 만큼 물리 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그때의 상황은

그 집 아들과 부인이 뒷산으로 산책을 가는 상황이었다는데,

목줄을 하고 있었고

그때 동네 떠돌이 개들이 덤볐다는 것이다.

아마 대문 앞을 지나다니며 서로의 탐색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닫힌 쇠창살 대문 때문에 조우가 없었을 뿐 언젠가부터 한 번쯤 겨뤄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주인 여자는 목줄을 놓치면 더 큰 싸움이 될 것 같아서 있는 힘껏 목줄을 당겼다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이리가 더 크게 물렸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때 놔줘 버릴걸 하면서 후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랬더라면 그 거리의 개들은 아마 결단이 났을 거라는 주인여자 화도 나지만 줄을 꼭 붙들고 있었던 자기의 행동을 자책하고 있었다.


이리의 몸에는 뻘건 머큐롬을 찍어 발라두어서

다친 상처보다 군데군데 발라진 머큐롬이 더 무섭게 보였다.


다시 나가면

분명 그 녀석들과 다시 한번 조우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때로 덤빌 것이다.

험한 꼴 당할까 염려한 주인 여자는 녀석을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에 묶어두었다.

이리는 갑갑하고 지루해했다.


그 무렵이었다.

털빛은 바랜 황갈색에 눈가에는 눈물자국이 뚜렷한 마른 암컷 개 한 마리가 대문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 것은.

녀석은 잠시 대문 열리는 틈을 타서 집안으로 들어와 이리 밥그릇의 사료를 먹는가 하면

이리도 그걸 묵인해 주는 것이 둘의 사이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묘했다.


문단속을 철저히 하자 떠돌이 녀석은 밖에서,

이리는 대문 안에서,

서로 맞장구를 치듯 소리를 질러 댔다.

며칠째 울리는 늑대 같은 울음소리에 동네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알고 보니 그 암컷은 떠돌이개 우두머리의 암컷이었다.


바람난 암컷을 찾으러 온 것인지,

아니면 감히 우두머리의 여자를 유혹한 이리를 응징하려 함인지, 어느 날부터 험상궂은 떠돌이 개들이 대문 앞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또다시 흰색 이리의 몸이 선명한 붉은 머큐롬으로 뒤덮였다.

이게 빨간 개였던가!.


열린 대문 사이로 동네 부랑개들이 침입해 묶여있던 이리를 물고 뜯고 씹어서 한동안 난리가 났었던 모양이다


산책길에서 터진 집단 린치사건 이후 이리의 당당함은 볼 수 없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묶여있던 이리가 또 테러를 당한 것이다.

린치 때문인지 테러 때문인지

그도 아니라면 상처투성이의 몸의 고통인지

아무튼 이리는 아주 대추나무아래에 널브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대문 앞을 지나가는 개들을 평가하던 이리,

카리스마 하나로 동네를 쥐락펴락했던 이리,

소심한 개들은 꼬리를 있는 힘껏 가랑이사이로 구부려 넣고 힐끔 쳐다보는 듯 마는 듯 내빼기 일쑤의 카리스마 이리다.

엎드린 자세에서도. 동네 개들을 평가하던 그다.


자기보다 못하다 싶으면 아주 하품을 하면서 누워 버렸고,

야무져 보이는 녀석이 지날라 치면 일어나서 근육에 힘을 주고 가볍고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냈다.

옆에서 들어만 봐도 지나는 개의 강단 정도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대문 앞에 축 늘어져 자고 있다.

얼굴과 다리는 처참하게 찢겨 있었다.


며칠간 약을 먹이며 돌본 끝에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었다.

녀석의 눈빛이 예전의 그 맑은 고요함을 되찾았을 때, 비로소 목줄을 풀어주었다.

녀석은 마당을 몇 바퀴 배회하다

지루한 듯 몸을 크게 몇 번인가를 털었다.

그리고 잠시 사람들이 그를 잊은 사이,

이리는 사라졌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났지만 이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점은 녀석뿐만 아니라 밤마다 대문을 위협하던 그 흉포한 불량 개 무리들까지 한꺼번에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이리가 누워 있던 이불 위에 나비 한 마리.

녀석이 남긴 야성의 향기를 맡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날개가 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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