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늘 사이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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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어딘가 믿는 구석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좌우명을 품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한 사람의 말을 길잡이처럼 붙잡고 산다.
또 어떤 이는 신앙이나 철학 속에서
삶을 버텨 갈 기준을 찾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삶의 갈림길에서 다시 중심을 잡게 해 줄 기준이 있다면
세상의 자잘한 파도에 마음이 그리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자기 기준을 세운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붙들어 줄 중심을 세우지 못한 채
물결 속에 몸을 맡기듯 살아간다.
무엇을 좇아야 할지 몰라 이리 부딪히고 저리 흔들리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이
한 생은 어느새 조용히 흘러가 버린다.
나는 과연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돌아보면 내 삶의 한가운데에는
길고 깊은 고통의 터널이 놓여 있었다.
누구라도 자기만의 검은 터널이 존재했었겠지만,
내가 겪은 고통은 남들의 고통보다 컸다
왜냐면 내 고통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내게 어떤 운을 가져다주었는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시간이 나를 어떤 내면의 세계로 이끌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철학이라 부르기에는 못 미칠 일이지만
그때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또 다른
창을 얻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세상을 하나의 방향으로만 바라보려 했다.
옳고 그름이 또렷하게 갈라져 보였고
빛은 빛대로, 어둠은 어둠대로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빛과 그늘은 언제나 함께 있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도
다른 자리에서 보면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의 나는
세상을 하나의 시선으로만 보지 않으려 한다.
빛이 드는 자리와
그늘이 머무는 자리를
함께 바라보려고 한다.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 사물을 바라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뒤늦게 얻은
나의 작은 철학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흔들리지 않는 삶을 기대하지 않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어느 정도의 흔들림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신보다
흔들리는 마음이라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침반의 바늘은
북쪽을 가리키기 위해 떨리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돌이켜 보면
그 혹독했던 시간도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다.
삶이란
빛만을 따라 걷는 길도 아니고
그늘만을 견디는 길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