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낮춘다고 해서 마음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by 박희정

익사할 것 같은 공포 속에서도 끝내 놓지 말아야 할 것은 타인의 손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침착함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한다. 이는 위급한 상황에서 인간이 보이는 가장 원초적인 몸짓이다.

체면이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상황이 절박해지면,

아무나 붙잡고 내밀한 사정을 구구절절 늘어놓게 된다.

하지만 조급함이란,

결국 나의 가장 취약한 곳을 타인에게 무방비로 드러내는 일이다.


살다 보면 반드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이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공포가 해일처럼 밀려올 때가 있다.

당장 세상이 무너질 일이 아님에도 마치 모든 것이 끝난 듯한 착각에 빠져,

스스로 쌓아온 평정심을 단숨에 허물어뜨린다.

그럴 때 내미는 손은 구원이 아니라 부끄러움의 씨앗이 되곤 한다.

도움을 줄 의지도 없고,

오히려 나를 수렁으로 밀어 넣으려 했던 이에게 내보인 비굴함은 훗날 처절한 후회와 치욕으로 되돌아온다.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사정들을 쏟아냈을 때 돌아오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불편한 시선뿐이었다. 상황은 냉철해야 했다.

침착함을 잃은 채 내민 손은,

결국 나라는 존재의 무게를 스스로 가볍게 만드는 행위에 불과했다.


시간이 흘러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하기 힘든 까닭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시절의 내가 나조차 존중하기 어려울 만큼 흐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나를 낮출 필요는 없었다. 상황이 급박할수록 필요한 것은 발버둥이 아니라 숨을 고르는 여유였다.


모든 위기가 곧 익사는 아니다.

모든 것을 구걸할 일도 아니었다.

"안 되면 그만"이라는 처연한 단호함이 필요했다. 그러나 무언가를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는 집착이 올바른 이성을 가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함은 이해하지만, 발이 닿는 얕은 물속에서조차 허우적거리며 스스로의 격을 깎아낼 이유는 없다.


잠시 멈추어 상황을 직시하면 보인다.

잠시 멈춘다고 죽지 않는다.

멈춘다고 해서 될 일이 안 되거나,

안 될 일이 되지도 않는다.

이별을 고하는 연인 앞에 울며 매달린다고 해서 떠난 마음이 돌아오지는 않으며,

설령 돌아온들 그것을 온전한 관계라 부를 수 도 없다.


침착함은 위기 속에서 내 자존을 지켜주는 방패다.

자존심은 지켜낼 때 그 또한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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