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나의 가장 작고 낮은 신(神)
학교가 파하고 난 뒤, 아이들의 소란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운동장에는 쓸쓸함이 안개처럼 내려앉곤 했다. 멀리 들녘에서 들려오는 농약 살포기의 기계음은 여물어가는 나락 사이로 외로움을 흩뿌렸고,
갈 곳 없는 어린 마음은 그 소음의 끝을 잡고 서성였다.
집으로 발길을 돌려본들 반겨줄 온기는 없었다.
허리에서 흘러내리는 책보를 받아줄 손길도 부재한 공간. 까만 고무신에 물든 발등 위로는 신발과 맨발의 경계가 검은 띠처럼 그려져 있었으나,
그 경계 안 어디에도 나를 불러주는 신호는 없었다.
할머니는 교회 신방 가신다고 했고,
함께 지내던 고모마저 진학 때문에 도시로 떠나버린 집.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무도 찾지 않는
산중 암자 같았을 것이다.
문득 들른 과객 스님의 적막일 수도 있겠다.
해가 졌는지 남았는지도 모른 채 서둘러 끼니를 먹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억지 잠을 청했다.
어둠 속에서 깨어나면 그때부터는 고행보다 지독한 뒤척임이 시작되었다.
선잠의 모서리마다 출몰하는 온갖 잡귀들과 싸우며 사투를 벌이던 끝에,
나는 나만의 작은 생존 비법 하나를 터득했다.
할머니가 신방 가는 날에는
토방 위에 할머니의 고무신을 가만히 놓아두고 잠드는 것.
그것은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가련한 신호이자, 어둠을 향해 내미는 유일한 방패였다.
귀신이든 정적(靜寂)이든, 마루 아래 놓인 신발 한 켤레가 주는 위안은 생각보다 컸다.
할머니에게는 교회의 십자가가 구원이었겠지만,
열 살 남짓한 내게는 달빛 아래 하얗게 엎드린 고무신 한 켤레가 유일한 믿음이자 신앙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골의 여름밤은 모기 다리만큼이나 더디게 밝아져 갔다.
돌이켜보면 인류의 종교란 것도 결국 무서움과 고독에서 피어난 꽃이 아닐까 싶다.
두려움이 깊을수록 무엇인가를 붙잡아야만 하니까.
마음 한구석에 믿고 의지할 대상 하나쯤 품고 산다는 것, 그것이 비록 닳아빠진 고무신 한 켤레일지라도 그것은 축복이다.
생의 가장 캄캄한 밤을 건너게 해주는 힘은 때로
거창한 교리가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놓아둔 작은 증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내 마음의 토방 위에 신발 한 켤레를 놓는다.
나의 신(神), 나의 고무신.
그 작고 낮은 믿음이 여전히 나의 밤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