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곧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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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인생이 조금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거창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지루하던 일감이 어느새 손에 붙고, 딸네 집에 가서 목놓아 우는 아이를 달래는 소란스러운 시간도 예전만큼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상을 살아가는 일 자체가 전보다 조금 더 흥미로워졌다.
무슨 까닭일까 가만히 짚어보니,
인생은 저 먼 미래 어디쯤에서 근사하게 매듭지어지는 ‘완성본’이 아니었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느냐, 그 행위 자체가 곧 인생이었다.
요즘은 가급적 오늘을 재미있게 살아보려 한다.
정말로 배꼽 잡을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그렇게 살기로 마음의 좌표를 조금 옮겨두었을 뿐이다.
취미로 시작한 팬플룻
처음에는 언제쯤 번듯하게 한 곡쯤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마음은 아직 서성이고, 정작 내 숨은 오늘의 서툰 연습 위에 놓여 있었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늘 저만치 앞서 가 있었다.
그 거리가 멀어질수록, 하루의 연습은 배움이 아니었다.
함께 시작했던 이들이 그만두는 모습을 보며 문득 알게 되었다.
지루했던 것은
늘 내일만 바라보던 내 마음이, 모든 시간을 지루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토록 갈구하던 완성의 순간이 오면, 그다음엔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보니 별달리 대단한 것은 없었다.
한 곡을 연주하면 또 다른 곡을 배우고,
조금 나아지면 또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띌 것이다.
필라테스도 마찬가지였다.
배운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몸은 뻣뻣하고 동작은 고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멋진 몸매’나 ‘완벽한 자세’라는 기대를 조금 내려놓고 나니,
근육이 당기고 숨이 차오르는 그 시간조차,
이제는 그저 내 하루의 정직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진다.
인생도 다르지 않았다.
삶은 도착지에 가서야 확인하는 결론이 아니라,
지금 발을 내딛는 과정 그 자체였다.
과정이 무색해지면 삶도 함께 빛을 잃는다.
나 역시 하루하루를 그저 견디고 버티며,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던 어두운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이 곧 인생’이라는 단순하고도 명징한 사실 앞에 서고 나니,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비로소 표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조로운 업무에도, 서툰 팬플룻 연습에도,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도,
심지어 찰나의 짜증이 치미는 순간의
감정마저 내가 아직 생생히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사는 재미는 특별한 날에만 배달되는 선물도 아니었고,
무언가를 성취한 뒤에 덤으로 받는 보너스도 아니었다.
그것은
별것 아닌 하루를 내 삶으로 껴안을 때
비로소 돋아나는 작은 싹 같은 것이었다.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사람은 대단한 일을 성취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질감을 놓치지 않고 제 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