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세상을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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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지었다는 말은 참 따뜻했다.
사랑해서 만들었고, 그 사랑을 나누기 위해 존재를 불러냈다는데, 좋았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애초에 아무도 없었다면, 굳이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없는 세상을 굳이 깨우고,
천지를 창조하느라 애쓰고, 마지막 날에는 쉬어야 했던 그 번거로운 일을 신은 왜 했을까.
그냥 혼자 있어도 아무 문제없었을 텐데,
굳이 존재를 만들어 이런저런 하소연을 귀 아프게 들어야 했을까.
없던 생명을 태어나게 하여
기쁨과 슬픔과 병을 주었다.
그리고 늙음과 이별까지 짊어지게 해 놓고,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번거로운 일을 왜 했을까.
심심해서,
하다못해 이런 거라도 만들어 보자는 심정이었을까.
사람은 대개 부족한 것이 있을 때 무언가를 만든다.
외로우니 관계를 맺고,
허전하니 말을 걸고,
필요하니 손을 뻗는다.
인간은 부족해서 그런다지만,
완전한 존재라면 무엇이 아쉬워 세상을 지었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노쇠는 시작되고,
사랑하는 순간부터 이별의 가능성은 함께 들어온다.
이유 모를 허무가 가슴 밑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날,
돌아보면 인생이 참 야속하다는 생각이 밀려올 때가 있다.
이토록 아픈 세계를 굳이 시작시켜 놓고,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신의 장난 아닌가 싶다.
가득 찬 샘물이 흘러넘치듯
하느님의 선함이 세상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신앙을 추앙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샘물은 맑게 흐를지 몰라도
인생은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서 “다 뜻이 있다”는 말로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해도,
그것이 언제나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순간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고통의 부재를 뜻하지는 않는다.
고통은 여전히 고통이다.
그럼에도 끝내 부정할 수 없는 미세한 희망이 남아 있어
그래도 견디는 중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왜 없는 세상을 굳이 불러냈을까.
없는 세상을 굳이 불러냈다면,
그 세상이 겪는 아픔까지 끝까지 함께 짊어지는 존재여야 하지 않는가 싶다.
어딘가에서 굽어살피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신의 전능함보다 그 책임을 먼저 보고 싶다.
왜 태어나게 했는가.
왜 견디게 하는가.
여전히 믿음 앞에서 쉽게 무릎 꿇지 못하고,
그렇다고 등을 돌리지도 못한 채
나는 아직 그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