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 앞에 선 사람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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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 돈을 좋아해서 돈 다루는 직업에 많이 종사하게 된 것은 아니다.
세상이 그들에게 남겨둔 좁은 골목이 하필 돈 다루는 길이 있었을 뿐이다.
사람은 늘 결과만 본다.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문이 닫혀 있었는지는 보려 하지 않는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도 대개 거기서 시작되었다.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은 곁에 살되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땅도, 직업도, 사회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문도 허락되지 않았다.
살 수는 있었으나 늘 가장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문이 닫히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돌아간 길 끝에서 마주한 자리가 상업과 대금업, 그리고 금융이었다.
기독교 사회는 이자 받는 일을 금기시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돈을 필요로 했고,
왕도, 상인도, 농민도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살 수 있었다.
필요한 일인데 자기 손은 더럽히기 싫은 일.
유대인은 그 기만적인 빈칸을 메웠다.
그들이 그 자리에 많았던 것은 탐욕 때문이 아니라, 갈 수 있는 길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묘하다.
빌릴 때는 구원의 손길이라 부르고, 갚을 때는 압박이라 느낀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사람은 구조를 탓하기보다 눈앞의 상대를 원망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빚을 준 사람은 빚을 진 사람보다 더 쉽게 미움받는다.
필요할 때는 찾고, 불편해지면 욕하고, 나중에는 그 증오를 도덕으로 포장한다.
“우리는 하지 않는 비천한 일을 저들은 한다.”
그 말은 머지않아
“저들은 원래 그런 종족이다”라는 낙인이 된다.
사회가 길을 막아 놓았다는 사실은 잊고,
우회해서 살아남은 방식만 본다.
그리고 그 생존의 자세를 그 사람의 본성이라 한다.
문을 잠가 놓고 밖에 선 사람에게 왜 늘 밖에 있느냐고 묻는 격이다.
길을 막아 놓고 돌아가는 사람에게 왜 굽은 길로만 가느냐고 비웃는 꼴이다.
차별은 먼저 문을 닫고,
편견은 그 닫힌 문 앞에 선 사람의 처지를 보고 성품을 판단한다.
유대인은 실제로 한 일보다, 살아남기 위해 떠맡은 자리 때문에 더 오래 미움받았다.
제 얼굴보다 남이 씌운 탈로 기억되었다.
더 잔인한 것은 권력이 이 구조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필요할 때는 불러 쓰고, 민심이 들끓으면 가장 먼저 사지로 밀어냈다.
유대인 박해의 역사는 어쩌면 이 한 문장으로도 설명된다.
세상은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적을 좋아한다.
긴 설명보다 짧은 비난을 더 빨리 믿는다.
그래서 어떤 민족은 역사가 강요한 자리를 본성으로 오해받고,
어떤 사람은 시대가 몰아넣은 생존 방식을 성격이라 비난받는다.
이것은 비단 유대인만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살다 보면 닫힌 문 앞에 설 때가 있다.
선택이 아니라 사정이 척박한 자리로 밀어 넣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사정보다 모양을 먼저 본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지나온 닫힌 문들을 함께 보는 일이다.
문이 닫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문 앞에 선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역사의 잔인한 오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