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농사

by 박희정

자식 농사,

그 시린 훈장(勳章)에 대하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싶고 그 흔적을 세상 앞에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학자는 저서로 자신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평범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젊은 시절을 통째로 갈아 넣어 얻은 유일한 결과물이 자식이라면 어떠한가.

평생을 바쳐 길러낸 자식을 한 번쯤 자랑해 보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가장 큰 낙 하나를 스스로 봉인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식 자랑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한때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눈부시게 자라던 아이가 어느 날 삶의 궤도를 이탈해 나락으로 떨어질 때,

그 부모가 짊어져야 할 마음의 무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타인의 시선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은 시작에 불과하다.

자신의 생애 전체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듯한 참담함 앞에서,

부모는 속수무책으로 서성인다.


그럼에도 자식이 큰 풍파 없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만 준다면,

부모는 못다 한 자랑을 언젠가 손주를 통해 이어갈 기약이라도 품어볼 일이지만.

그런 소박한 허락조차 받지 못한 이들도 있다.

그들은 남모르는 가슴앓이를 덧난 상처처럼 품은 채,

끝내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안고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부침은 빛과 그림자가 극명한 세계에서 자주 목격된다.

촉망받던 유망주가 뜻을 펴지 못하고 꺾이거나,

그릇된 길로 접어들었을 때 부모가 겪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상상을 넘어선다.

자식의 실패는 곧 ‘내 인생의 실패’라는 날 선 화살이 되어 부모의 심장에 박히고,

삶은 자포자기의 늪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타인의 자식 자랑이나 가족 자랑을 그리 밉살스럽게만 볼 일은 아니다.

평생을 들여 가꾼 인생의 성적표를 단 한 줄도 읽어 내려가지 못한다면,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이웃과 온기를 나누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삶이라면,

차라리 혼자가 덜 고단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 해의 땀방울이 맺힌 농사도 풍년을 맞으면 동네 사람들과 자랑을 나누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청춘을 다 바치고 뼈를 깎아 일군

‘자식 농사’임에랴.

그 고단했던 세월에 대한 보상을,

이웃의 부러움 섞인 눈길로 한 번쯤 되돌려 받는 일이 어찌 과한 욕심이겠는가.


자랑은 허세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은 한 인간의 애틋한 고백이다.

오늘도 자식의 이름 뒤에 숨어있을 부모들.

그들의 밉지 않은 긍지를, 나는 기꺼이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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