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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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말썽’, ‘일탈’, ‘지나가는 병’ 같은 말로
쉽게 분류한다.
어른들은 그 시간을
대개 견디면 끝나는 통과의례쯤으로 여기지만,
그때의 아이들은
표정 하나, 말끝 하나를
붙들고 놓지 못하던 시기다.
자기 안에서 끝없이 질문이 생겨나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을 세워보던 존재들.
그 아이들은
세상을 가볍게 통과하지 못했다.
느낌은 지나치게 깊었고,
생각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들이 건네는
단정한 답들로는 좀처럼 안심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방황은
반항이 아니라 사유였다.
유난히 방황하던 아이들은
대체로 감정의 문이
활짝 열려 있던 아이들이었다.
친구의 한마디에 하루가 무너지고,
어른의 무심한 시선 하나에
자기 자리를 의심하던 아이들.
세상의 온도를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던 아이들.
더 힘들었던 것은
그 감정을 말로 옮길 언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울어도 이유를 설명해야 했고,
침묵해도 오해를 감수해야 했다.
밖으로 나오지 못한 감정은
결국 자기 안으로 되돌아가
스스로를 할퀴었다.
사춘기의 방황의 강도는
의지의 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깊이였다.
많이 느끼는 아이는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타인의 고통에 쉽게 반응하는 마음,
세상의 모순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시선은
삶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 불편함을
흘려보낼 길이 있었느냐다.
말로, 글로, 음악으로,
혹은 침묵으로라도
자기 안의 소란을 견딜 수 있었는지.
그 길이 막혀 있을 때
방황은 상처로 남았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은 그 시절의 방황은
무너짐이 아니라 몸부림이었다.
방황의 깊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 어딘가를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