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 ㅡ
⸻
삶의 의미를 묻는다는 것,
그 질문의 시작이 어느 때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시점에서 묻기에
백인백색(百人百色),
천 인천색(千人千色) 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 질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 사는가.
아마도 삶에 대한 자기 확신을 얻고 싶기 때문이겠지만 결론은 없다.
그럴 시간에 그냥 사는 것이다.
수십억 년 물이며 흙이며 떠돌다가 잠시잠깐 생명이 되었으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어떻게 생명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태어나기 전,
나라는 생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죽고 나면 또 무엇이 될지 모른다.
무엇으로든 바뀌겠지만 나로서는 끝이다.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살아 있는 동안뿐이다.
그 짧은 틈이 존재의 전부이며,
그 순간이야말로 우주가 내게 허락한 기적이다.
가끔 썩지 않은 씨앗을 볼 때가 있다.
어떤 씨앗은 생명으로 피어나고,
어떤 것은 영원히 피어나지 못한 채 사라진다.
그건 자연의 선택이자, 천지신명의 뜻이다.
하루를 견디는 일이 지옥 같다고 느끼는 사람,
더 말할 필요 없다.
인생은 고(苦)다.
어떻게 생명이 되었는지를 모르니 더 고통이다.
내가 지금 있다’는 사실,
없을 수도 있었는 데 있게 되었다고 하면 그래도 좀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봐야 피장파장일 수도 있고,
애초에 생겨날 일이 없었더라면
이렇다 저렇다 생각할 것조차 없었을 텐데.
한 번의 생명이라도 되어봤으니.
이말 저말 하는 것이다.
내 존재의 근원은 흙이나 물이나 풀,
혹은 어떤 미세한 존재로
지구와 함께 공존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렇게 생명으로 존재해 보았으니
울고, 웃고, 떠들 수 있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
‘나’라는 근원이 생명이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다.
그러니 지금의 살아 있음에
감사까지는 아니라도,
기왕 태어났으니 경험이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배고플 때는 밥 먹자,
졸릴 때는 자자,
그리고 살아보자 그것이 삶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