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얼굴

by 박희정

손녀의 얼굴. ㅡ


손녀가 생겼다.

갓 두 달 된 아이 얼굴이 어쩐지 낯익다.

그 작은 이마와 눈매, 성질머리까지—

어디서 본 듯한 구석이 많다.


아직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성질이 급하다.

발뒤꿈치가 닳아 피가 났다.

저 성질이면 곤란한데 싶다가도,


아빠 닮은 아이라면 곤란한데,라는 딸의 말에,

속에서 확 불덩이가 올라온다.

성질 더럽다는 이야기다.


손녀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엔 내 얼굴이,

또 어느 순간엔 근자에 떠나간 가족의 얼굴이.

피카소가 그려도 다 못 그렸을 수많은 세월의 그림자가 새겨져 있다.


생각해 보면

내 얼굴 속에 수만 년 조상의 그림자가 있을 테고

이 얼굴 속에 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손녀게서도 발견되는 나의 모습이 놀랍긴 한데

손녀의 급한 성질에 꼭 내 책임이 큰 것인가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일이다.

내 기질 중 어느 부분은

사냥터를 달리던 조상의 야성이 전해있고,

아이의 어딘가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

손녀의 급한 성질은 나를 탓할 일은 아니다.

책임을 묻자면 유전자를 덜 순화시켜서 전달한 조상의 책임이 훨씬 크다.

나는 죄가 없다.

있다면 아주 조금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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