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살기로 했다.

by 박희정

가볍게 살기로 했다. ㅡ


가볍게 살기로 했다.

굳이 시크함은 없지만, 조금은 가벼워져도 좋을 나이다.

이러면 어쩔 건데,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런 질문들에 더 이상 깊이 끌려들어 가지 않기로 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파고들면 깊어지기보다

우울이 더 빨리 찾아왔다.


이제는 가볍게 살아도 되는 나이다.

심사숙고할 일도 예전만큼 많지 않고,

누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에서도 멀어졌다.

그저 나만 잘 살아내면 되는, 그런 시절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홀가분하게 살아도 될 내가

왜 그리 인생의 골짜기로 깊이 들어가려 했는지 묘하다.

그래도 아쉬움은 없다.

한 번은 깊이 빠져본 사람이 건져 올릴 수 있는

묘한 것도 있으니까.


이제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

깊이 들여다본다고 심오해지는 것도 아닌 바에야 간단하게 살기로 했다.

깊이 봐 봐야 상처만 도드라져 보이고.

봄꽃도 가까이 보면 흠이 보이듯,

가까이 보고

더 깊이 들여다본다고 꽃이 더 활짝 피는 것도 아니더라.

깊이 봐 봐야 그 꽃이 그 꽃이지,

더 예뻐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맘에 위안을 더 주는 것도 아닌 바에야 간단히 살기로 했다.


깊이 들어가 봐야 우울해지고

늪이니까.

이제는 가장자리에서만

바람처럼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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