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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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라는 것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뒤로는 모든 번뇌가 저절로 가라앉아 있을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한 줄기 바람이 팔등을 스쳤고,
시원했다.
그런데 누가 시원하다고 느끼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감각을 느끼는 나보다 앞서,
이미 ‘시원함을 알고 있는 어떤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나의 체험이었다.
있음이었다.
그러니 집착하지 않음이 곧 길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알았음에도 밑바닥까지 가라앉아보지 못한 마음은 집착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걸 잊어버렸다.
그 뒤로 몇 차례 자잘한 체험이 이어졌다.
잠시 마음이 고요해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탁류처럼 흐려졌다.
도로 아미타불이었다.
‘이게 왜 이럴까.’
의문을 품은 채 시간은 흘러갔다.
본성을 보았는데 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가.
그 질문 하나를 붙들고 거의 1년을 살았다.
그동안 내 마음은 계속 안으로만 향해 파고들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왜 사는가—
마치 끝없는 심연처럼,
파고들수록 무거운 침잠만 깊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알았다.
그렇게 ‘알아내려는 마음’ 자체가
우울을 불러온다는 것을.
어둡게 천착하는 마음은
스스로의 그림자를 더 선명하게 할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멈추기로 했다.
실렁실렁 살기로 했다.
그랬더니 달라졌다.
집착이란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손아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놓지 못하는 마음에도 있다는 걸
나는 말로는 잊어버린다고 했지만
마음은 계속 쥐고 있었다.
삶의 의미를 붙들었고
존재의 이유를 물었으며
그러니 해방이 올 리 없었다.
그 모든 것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멈추기로 하자
비로소 작은 해방감이 찾아왔다.
바람이 팔등을 스쳤던 그날처럼,
고요한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깨달음은 번쩍이는 순간보다
놓아버리는 습관에 있었다.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버릴 때
비로소 평안이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