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푸르트의 겨울에서 마주한 그림자

우울증 환자의 살짝 정신 나간 독일 여행 에세이

by 재즈트리


아무리 일어나 몸을 움직이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일어나 물 한 잔을 하러 가자 마음먹었지만 이내 나의 정신은 '물 그거 안 먹어도 죽지 않아'라며 힘없이 속삭인다.

전 날 수면유도제를 평소보다 많이 먹은 탓일까. 더 이상 이 여행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이때만큼은 이곳 아름다운 독일로 왔다는 사실이 내가 툭하면 무기력의 바다에서 허우적댄다는 사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듯했다.


이런 무기력의 상태가 되면 그 어떤 아름다운 풍경도, 그 어떤 맛있는 음식도, 미적인 예술품도 내가 빠져 있는 허망이라는 공간에선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그간 우울을 달래는 약으로 잘 치료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고, 약의 용량도 점점 줄고 있었기 때문에 이 여행을 오는 내가 다시 이렇게 무기력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이곳 '낮의 길이'가 나를 이런 기분으로 몰아버린 이유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오후 네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해는 점점 기울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기분을 관장하는데 중요한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평소에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밤이 좀 더 길어졌다는 이유로 나를 삼키는 슬픔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평소 부지런한 남들보다는 늦게 일어나는 탓에 이곳 독일로 여행을 와서도 오후가 시작되어서야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늘었다. 죄책감 같은 감정이 들었지만 해가 짧은 하루도 신기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생각했고 밤은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를테면 따뜻하고 잔잔한 불빛 속에서 고혹한 멋을 드러내는 오래된 건물들, 시끌벅적한 구시가지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마시는 거룩한 밤의 맥주, 찬 입김을 불어가며 먹는 소박한 빵 같은 좋은 것들이 많았으므로 나는 오히려 기쁠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우울한 이들이 쐬어야 하는 햇빛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곳은 겨울과 가까워지면 해가 뜨는 낮에도 비가 오는 축축한 날이 잦아진다. 그나마 고개를 내미는 밝은 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속에 숨어 좀처럼 나타나는 일이 없다. 그런 우중충한 가을 늦은 하루의 시작이 나의 기분에 많은 영향을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오후가 시작되는 시간의 기상시간이 점점 늦춰지더니, 날이 지날수록 결국 해가 지기 시작하는 네시 경에 일어나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내 몸은 시린 독일의 비바람에 성장을 잠시 멈춘 앙상한 나무처럼 이불속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나무야 그 바람을 겨울 간 견디고 다가올 봄에 몸을 활짝 펴기 위한 준비라 할 수 있겠지만 나의 마음은 시리고 쓰라린 바람 속에서 웅크린 채 시간이 멈춰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결국 일어나야만 하는 때가 있는데, 바로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야만 하는 상황.. 나의 방광에 감사함을 표해야 하는 걸까.

방안의 불을 켜고 티브이를 켠다. 공허한 진공의 공간 속에서 울려 퍼지는 티브이 소리는 내 귀에서 소리 없이 웅얼웅얼거리기만 할 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화면만 바삐 돌아갈 뿐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나갈 준비를 한다. 어디든 좋으니 일단 나가보자.






s-bahn을 타고 hauptwache에 갔다. 고작 15분을 달린 전철이 역에 도착하자 해는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역 밖으로 나오자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상인들이 노점 건물을 만들고 있었다. 대부분 나무와 솔잎으로 외벽을 꾸미고 겨울의 밤과 어울리는 여러 색의 LED 조명이 반짝이는 아기자기한 간판을 달고 있었다. 무작정 걸으며 벌써부터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지나친다. 이내 자주 가는 카페로 가자 마음을 먹는다.


마켓이 모인 길을 가로질러 카페로 걸으며 나의 머릿속은 지난 과거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불현듯 갑자기 수치스럽고 우울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밤을 즐기러 온 많은 독일 시민들 사이에 섞여 걷고 있었지만 나의 발걸음은 과거의 어두웠던 사건들 속에서 뚜벅거리고 있다. 화려한 불빛과 시끄럽고 활기찬 프랑크푸르트의 밤은 나에게 더 이상 미적 감상과 사유의 대상이 아니었다. 나라는 세계에 갇혀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나. 우울한 자에게 여행은 타임머신을 타듯 갑자기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이런 일은 갑자기 기분이 다운이 되거나 멍하게 있을 때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밥은 먹지만 아무런 맛과 향이 느껴지지 않는, 티브이를 보지만 형체와 소리는 그저 나를 통과해 빠져 나갈 뿐인 의미 없는 순간이 되고 만다. 보통 그런 멍한 순간이 계속되기도 하고 갑자기 다른 기억들이 번개처럼 스치기도 한다. 부모님이 싸우는 상황에서 어린 내가 우는 장면이 번쩍하며 정지된 사진처럼 머물러 있기도 하고 술에 취한 아버지가 아래층 현관부터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 장면에서 불안해하며 전전긍긍해하기도 한다. 그런 때가 되면 나의 기분은 더욱더 아래로 곤두박질쳐댄다. 그때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난 왜 꼼짝도 못 하고 그 상황에서 울고 있었을까. 왜 화내지 못했을까 같은 원망이 더해지기도 하고 더 이상은 내게 아무것도 필요 없을 것 같은 공허함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나만의 다른 차원의 세계에 갇힌 나의 정신은 그냥 숙소로 돌아가자 하고 발길을 돌리기도 하고 관성에 이끌려 목적지로 향하기도 한다. 그날은 가고자 했던 카페로 이끌려 습관처럼 자주 앉았던 소파석에 자리를 잡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제야 정신이 드는 느낌이다. 사람들의 소리가 또렷이 들리고 주위에는 공부를 하는 사람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모여 수다를 떠는 한국 유학생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태블릿과 펜을 손에 쥐고 잠시 갇혀 있던 내 정신의 방황을 디지털 화면에 그대로 옮겨본다. 때로는 일기로 때로는 의미 없는 선들로 화면을 채운다. 언어나 선 같은 것들로 정리된 나의 감정은 다시금 현실에 눈을 뜨게 하고 잠시 방황했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울함에 무기력했던 지난 며칠간의 여행이 그저 무의미한 낭비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고 위안해본다. 오히려 내가 솔직해질 수 있었던 시간이지 않았나. 한국에 잠시 두고 온 사회적 가면을 쓴 나의 여러 페르소나들이 있다. 독일이라는 나라에 오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그런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고 자연스레 벗겨진 가면 뒤로 나의 민낯이 드러난다. 나의 솔직한 모습들이 심연 속에서 고개를 든다. 그것이 슬픈 기억이 건 수치스러운 과거이건 간에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한 진짜 내가 드러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내가 미처 헤아려주지 못했던 과거의 우울한 그림자가 아무런 눈치 볼 필요 없는 낯선 타국의 땅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런 슬픔이 나에게 남아 있었구나. 아직도 치료되지 않은 또 다른 내가 있었구나. 나의 의식이 직접 대면하기 위해 심연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림자라는 어두운 무의식이 치료를 위해 스스로 올라온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는 이 아름다운 땅에서 우울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치료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날 카페에서는 평소에 기억하지 못했던 과거의 어둡고 거칠었던 상황과 직접 마주하는 시간을 글쓰기를 통해 풀어나갔다. 용기 내어 대면하고 그 당시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자세하게 기록했다. 기록하고 대면했다는 그 사실 하나로 나의 기분은 나아졌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이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잠시 전의 나를 금세 잊어버렸다. 거짓말같이 식욕이 올라왔다. 아래층 카운터로 내려가 채소와 햄을 끼워 넣은 딱딱한 샌드위치를 시켜 허겁지겁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나는 새삼스레 다시 인정해야 했다. 나는 언제든 다시 주저앉을 수도 그 자리에서 나를 삼킬 수도 있다고. 어쩌면 그것들과 평생을 같이 해야 할 수도 있다고. 그렇지만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이 인생일지 모른다고.

적어도 세월은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더 세련되게 해 줄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