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함 속에도 잃지 않는 긴장감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수식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른들이 다룰만한 무거운 소재들을 아이들의 시선에서 풀며 판타지적인 요소를 더불어 캐주얼하고 독특한 매력을 살린 작품들을 볼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처럼 말이다. <파랑만장>은 동화라는 말은 어색하지만, 성인들의 전유물인 '비아그라'라는 소재와 이혼이라는 무거울 수 있는 상황을 아이의 시선에서 끌어가는 코미디다.
철이는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우울해한다. 그는 썸(!)을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 샤론과 한강을 걸으며 유튜브 브이로그 찍는 걸 도와준다. 샤론이 혼자 유튜브를 찍는 동안 혼자 앉아있는 철. 우연히 옆에 앉은 덩치 큰 남성의 통화내용과 전단지를 보고, 부부관계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약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통화하는 와중 경찰들의 습격으로 남자는 도주하게 되고, 철은 그가 도망치다가 흘린 약 한통을 줍는다. 그리고는 부모님의 이혼을 막기 위해 섀론과 함께 약을 먹일 방법을 강구한다.
잘 만든 영화들은 연기, 연출, 촬영 등 대부분의 파트에서 흠잡을 곳이 없다. <파랑만장> 역시 그렇다. 영화에 칭찬을 하려면 정말 많은 부분들이 있겠지만, 가장 칭찬하고 싶은 지점은 짧은 컷들로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스토리에서 철이가 엄마 아빠에게 약을 먹인다는 설정은 쓰기엔 쉽지만, 그걸 물리적 행위로 옮기는 건 어렵다. 철이는 아빠가 자는 사이에 억지로 약을 먹이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 후 철이가 샤론과 머리를 굴려서 떠올린 방법은, 약을 갈아서 아빠가 섭취하는 비타민에 넣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자칫 잘못 연출하면 단순히 유치하거나, 비약적으로 보이기 쉽다. <파랑만장>에서는 철이가 아이스크림 껍질을 까는 부감 쇼트와 아빠가 비타민을 요일별로 나누어 통에 담는 모습을 같은 구도로 촬영하여 리듬감과 만든다. 그 후 관객은 단순하게 정보전달과 리듬으로만 받아들일 법한 이 컷들을 통해 머릿속에 아빠는 비타민을 먹는다는 설정을 인지시키고, 추후 비타민에 비아그라를 끼워 넣는다는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빠의 비타민 쇼트를 회수하고 난 이후에는 혼자서 먹던 길쭉한 더위사냥을 샤론과 나눠먹는 장면으로, 썸만 타던 둘의 관계가 진전될 것 같다는 암시를 남기며 회수를 한다.
영화에는 철, 엄마, 아빠, 샤론을 제외해도 꽤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학습지 선생님, 의사, 간호사, 비아그라 판매원, 형사들, 화목한 가족들 등. 많은 인물이 나오면 보통은 모두 좋은 합의 연기를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은데, <파랑만장>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캐릭터의 경중을 떠나 모두 각자의 역할에서 해야 할 웃음 포인트들을 살리며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
유머러스함과 사랑스러움을 지니며 영화를 스릴 있게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이 영화는 연출과 색감, 캐릭터들의 매력들이 모두 조화로워 단편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매번 너무 겉멋 넘치거나, 무겁기만 한 영화들 사이에 머리를 식히며 기분전환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좋은 영화였다.